2026년 3월 21일 토요일

[로마, 역사·예술 산책] 바티칸 앞, 지하에서 깨어난 폭군

 2025 희년 공사가 찾아낸 칼리굴라의 비밀 정원

로마에서는 흔히 우스갯소리로 "지하철 노선 하나 뚫으려면 100년이 걸린다"라는 말이 있다. 삽만 뜨면 고대 로마 유적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지난해, 2025년 대희년을 준비하던 중에도, 로마 고고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엄청난 발견이 있었다. 그것도 로마의 심장부이자 바티칸 바로 앞마당에서 말이다!


오늘 함께 산책할 역사의 현장은, 악명 높은 로마의 3대 황제 '칼리굴라(Caligula)'가 숨겨두었던 2000년 전의 럭셔리 정원이다.


🚧 1. 바티칸 앞, 땅을 팠더니 튀어나온 고대 세탁소?

이야기의 시작은 2025년 가톨릭교회 대희년(Giubileo)을 준비하던 로마시의 야심 찬 토목 공사에서 출발한다. 천사의 성(Castel Sant'Angelo)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피아차 피아(Piazza Pia)'에 보행자를 위한 거대한 지하차도를 뚫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헷갈려하는 지하철 C선 공사 현장과는 다른 곳이다!)

포크레인이 조심스레 땅을 파 내려가던 중, 거대한 돌기둥들과 화려한 모자이크 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고고학자들은 이곳이 고대 로마의 거대한 세탁소, 즉 '풀로니카(Fullonica)'일 것이라 추측했다. 하지만 발굴이 깊어질수록, 단순한 세탁소가 아니라 기둥이 늘어선 아름다운 테라스 정원(Portico)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 2. 고고학의 스모킹 건: 납 수도관(Fistula aquaria)에 새겨진 이름

"과연 이 어마어마한 부지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미궁에 빠질 뻔했던 이 질문의 답은, 흙더미 속에서 발견된 낡은 납 수도관(이탈리아어: 피스툴라 아쿠아리아, Fistula aquaria) 하나로 명쾌하게 풀렸다.

고대 로마인들은 수도관에 소유주의 이름을 각인해 두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진흙을 닦아낸 수도관 표면에는 선명한 라틴어 비문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C(ai) Cæsaris Aug(usti) Germanici"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세상에! 이것은 바로 잔혹함과 기행으로 역사에 남은 로마 제국의 3대 황제, 우리가 '칼리굴라(Caligula)'라고 부르는 인물의 공식 본명이다. 이 파이프 하나가 이 거대한 정원이 칼리굴라의 사유지(Horti)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완벽한 '스모킹 건'이 된 것이다.


사실, 잘 알려진바, 성 베드로 대성전이 있는 자리도 원래는 칼리굴라 황제의 경기장이었고, 이 경기장은 후에 네로 황제가 자기 경기장으로 바꾸어 사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로마를 불지른 네로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여 순교의 현장이 되었다. 


🌺 3. 폭군과 아름다운 정원, 그 기묘한 역설

역사학자 수에토니우(Gaius Suetonius Tranquillus, 69년 - 130년 이후)의 기록에 따르면, 칼리굴라는 훗날 로마로 압송된 유대인 사절단을 바로 이 바티칸 근처의 개인 정원에서 맞이했다고 한다. 사절단이 진지하게 유대교 탄압에 대해 항의하는 동안, 칼리굴라는 이 정원의 건물들을 돌아보며 창문에 색유리를 끼우라는 둥 딴청을 피웠다고 한다.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일삼고, 자신의 애마를 집정관으로 임명하려 했던 미치광이 황제. 하지만 그가 가장 사랑했던 공간은 테베레 강변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값비싼 납 파이프로 물을 끌어와 분수를 뿜어내던 지극히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광기와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곳, 참으로 로마다운 역설이 아닐 수 없다.

- 좀 더 자세히 짚고 가자면, 칼리굴라 황제와 관련하여 유명한 일화 하나는 자신의 말(馬)을 집정관으로 임명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전설의 애마 이름은 '인키타투스(Incitatus)'다. 라틴어로 '빠른', '질주하는'이라는 뜻이다. 🐎 황제는 이 말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대리석 마구간과 상아 여물통을 주었고, 자줏빛 담요에 보석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심지어 말 전용 저택과 하인들까지 배정해 주었다고도 한다. 현대 로마사 권위자들은 이를 단순한 미치광이의 기행이라기보다, 무능한 로마 원로원(귀족)들을 향해 "차라리 내 말이 너희보다 낫겠다!"라는 모욕적인 블랙 코미디를 던진 고도의 정치적 조롱이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 오늘의 생각: 영원히 끝나지 않을 로마의 퍼즐

바티칸으로 향하는 화해의 길을 걸을 때, 이제 발밑을 한번 상상해 보기를 바란다. 화려한 가톨릭의 성지 바로 아래, 2000년 전 광기 어린 황제가 거닐던 아름다운 물의 정원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이것이 바로 우리가 켜켜이 쌓인 지층의 도시, 로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오늘은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영원히 끝나지 않을 로마 이야기 중 하나를 다루어 보았다.

 Ciao! 👋


📚 [참고 및 확인 가능한 출처]

  • 이탈리아 문화부(Ministero della Cultura): 피아차 피아 발굴 및 칼리굴라 수도관 발견 공식 브리핑 자료. 👉 이탈리아 문화부 공식 발표 전문 보기

  • 안사 통신(ANSA): '로마 바티칸 근처에서 발견된 칼리굴라 황제의 정원' 고고학 섹션 상세 보도. 👉 ANSA 고고학 뉴스 기사 보기

  • https://www.gbopera.it/2024/07/roma-nuove-scoperte-archeologiche-a-piazza-pia-il-portico-di-caligola-e-i-suoi-giardini-imperiali/ (일부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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