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바티칸의 시스티나 소성당. 미켈란젤로의 천장화가 압도적인 장엄함을 뿜어내는 그곳에서, 과거 교황들은 미사 때마다 아주 특별하고 화려한 책을 펼쳐 들었다. 오늘은 나의 사진첩에서 꺼내 여러분께 소개할 보물은 바로 16세기 르네상스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파르네세 성구집(Lezionario Farnese)'이다. 단순히 오래된 책이 아니라, 책 자체가 하나의 완벽한 르네상스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 1. 바사리가 극찬한 '작은 미켈란젤로'의 솜씨
이 책은 16세기 중반, 막강한 권력과 재력을 자랑하던 알레산드로 파르네세 추기경의 주문으로 로마에서 제작되었다. 그림을 그린 사람은 당대 최고의 세밀화가(미니어처 화가)였던 줄리오 클로비오(Giulio Clovio)다.
당시 예술가들의 전기를 쓴 유명한 역사가 조르조 바사리도 그를 "작은 미켈란젤로(piccolo Michelangelo)"라고 부르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돋보기를 대고 봐야 할 만큼 작은 지면 위에 거대한 프레스코화 못지않은 원근법과 인체 묘사를 구현해 낸 솜씨를 보면, 그 별명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2. 책 속에 펼쳐진 '산상수훈'과 황금빛 테두리
사진 속 화려한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예수님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가르침을 주시는 그 유명한 '산상설교(Sermon on the Mount)' 장면이다. 다음 페이지에는 마태오 복음서의 라틴어 원문이 정갈하게 적혀 있고, 복음사가 마태오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놀라운 것은 그림과 글씨를 감싸고 있는 액자 형태의 테두리 장식이다. 통통한 아기 천사(푸토)들, 고전적인 가면, 화려한 꽃 장식들이 황금빛으로 반짝이며 여백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교황과 추기경들이 얼마나 큰 황홀경을 느꼈을지 상상할 수 있다.
🔍 3. 나폴레옹의 침략이 남긴 상처
이토록 아름다운 책에도 역사적 시련은 있었다. 원래 이 책을 감싸고 있던 화려한 오리지널 표지는 나폴레옹 군대가 이탈리아를 침략했을 때 약탈당해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붉은색 벨벳 표지와 정교한 은장식, 그리고 도자기 문장은 1800년대 초반, 이 책을 소유했던 영국의 타운리(Towneley) 가문이 새롭게 입힌 신고딕 양식의 '새 옷'이다.
🔍 4.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학파(Scuola Grande di San Marco)에 있는 이유
"- Facsimile realizzato da Franco Cosimo Panini Editore" (프랑코 코시모 파니니 출판사에서 제작한 영인본)
프랑코 코시모 파니니(Franco Cosimo Panini)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이탈리아의 고문서 복제 전문 출판사다. 원본의 크기, 물감의 색감은 물론이고 양피지의 질감이나 금박 장식, 심지어 세월의 흔적까지 1:1로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 것으로 아주 유명하다. 단순한 인쇄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예술품 대접을 받는 '마스터피스급 사본'인 셈이다.
실제 16세기에 만들어진 오리지널 원본은 뉴욕 공립 도서관의 엄격한 항온·항습 금고 안에 보관되어 있어 일반인이 그 화려한 속지를 넘겨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산 마르코 스쿠올라 같은 역사적인 고풍스런 공간에서 완벽하게 재현된 사본을 통해 16세기 르네상스 황금빛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