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햇살이 로마 스페인 계단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여전히 관광객들로 활기가 넘치지만, 어딘지 모르게 도심 곳곳에서 느껴지는 뭔가 묵직하고 결연한 공기도 있다. 요즘 이탈리아는 곳곳에서 "평화의 행진(Marcia della Pace)'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구호는 이것이었다.
"논 레스티아모 인 실렌치오(Non restiamo in silenzio)!" -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
🕊️ 중동 전쟁의 화마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지금, 이탈리아인들 역시 가만히 있지 않고 연일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이면에는 이탈리아가 품고 있는 뼈아픈 역사와 바티칸이라는 세계 정신의 중심지가 보내는 묵직한 메시지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이탈리아의 헌법 11조, "전쟁을 배격한다"
이탈리아 헌법 제11조는 이렇게 시작한다.
"L'Italia ripudia la guerra come strumento di offesa alla libertà degli altri popoli e come mezzo di risoluzione delle controversie internazionali,(이탈리아는 전쟁을 타 민족의 자유에 대한 침략 수단이자 국제 분쟁 해결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거부한다)."
파시즘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역사를 겪은 후, 이탈리아 공화국은 평화를 헌법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새겨 넣었다. 시민들은 이 헌법 정신을 들며, 이탈리아 내 미군 기지(아비아노 기지 등)가 갈등에 직간접적으로 이용되는 것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단순히 반전을 넘어, "우리 땅이 누군가를 해치는 데 쓰여서는 안 된다"는 짙은 인본주의적 호소가 있는 셈이다.
최근 국제 사회를 얼어붙게 만든 이란에 대한 선제공격, 끝나지 않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가자지구의 비극을 강력히 규탄하며 시민들은 이렇게 외치고 있다. "L'indignazione non è più sufficiente, non possiamo accettare che il diritto e la vita delle persone valgano meno della logica delle armi." (분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생명과 권리가 무기의 논리보다 가치 없게 취급되는 것을 결코 수용할 수 없습니다.)
1. 광장의 언어, 아씨시의 무지개 깃발 🌈: 시위 현장을 보면 일곱 빛깔 무지개에 'PACE(파체, 평화)'라고 적힌 깃발이 펄럭인다. 평화의 성인, 성 프란체스코의 도시 '아씨시'에서 시작된 이 깃발 운동은 이탈리아 평화 시위의 상징이다. 뉴스나 사진에서 이 깃발을 발견하면 그 의미를 꼭 떠올려 보기를 바란다! 우리 한국에 촛불, 응원봉, K-pop이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무지개 깃발이 있는 셈이다.
2.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연대: 이번 시위에는 2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기억하는 노년층과 틱톡으로 전쟁의 참상을 실시간으로 보는 Z세대가 함께 손을 잡았다. 세대를 초월한 인류애적 연대가 어떻게 정치권을 압박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 참고 기사 및 출처 (2026년 3월 16일 기준)
📌 로마의 변두리에서 울려 퍼진 교황의 호소: "신을 어둠에 동원하지 마라"
시민들이 광장에서 평화를 외치던 바로 그 시각, 레오 14세 교황은 로마 외곽의 다문화 빈민 지역인 폰테 맘몰로(Ponte Mammolo)의 '예수 성심 성당'을 찾았다. 이민자 학교와 노숙자 쉼터가 있는 이 소박한 동네에서, 교황은 전쟁을 주도하는 전 세계 지도자들의 폐부를 찌르는 일침을 날렸다.
"Non coinvolgere il nome di Dio in scelte di morte." (신의 이름을 죽음을 선택하는 일에 끌어들이지 말라.) "Dio non può essere arruolato dalle tenebre." (신을 어둠의 세력에 동원할 수는 없다.)
또 국경을 닫고 이민자를 배척하는 정치권의 기류를 향해 "복음은 이방인을 환대하라고 말한다"며, 평화란 타인을 포용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올해 2026년 세계 평화의 날 메시지였던 "무장 해제된, 그리고 무장 해제시키는 평화 (Una pace disarmata e disarmante)"라는 교황님의 철학이 가장 척박한 땅에서 울려 퍼진 셈이다. 왜냐하면"Il riarmo non è la soluzione (군비 증강은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 참고 기사 및 출처 (2026년 3월 15~16일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