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이야기-불가리] 로마 제국의 웅장함을 손끝에 걸치다: '불가리(Bvlgari)'에 숨겨진 2천 년의 역사

 오늘은 명품 '불가리'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불가리 로고를 자세히 보신 적 있나요? 철자가 틀렸습니다. BULGARI가 아니라 BVLGARI. 이 한 글자 속에 로마 제국 2천 년의 비밀이 숨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명품 매장에서 불가리 반지를 끼어 본 사람은 많아도, 그 반지가 콜로세움을 닮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브랜드의 나이는 140여 년이지만, 불가리가 파는 것은 사실 2천 년 전 로마의 기억입니다. 오늘은 예술을 입는 명품, 그 중에서도 '남들은 모르는' 불가리의 진짜 이야기를 시대 순서대로 풀어 보겠습니다.


이 글의 핵심 요약

⚫ 불가리의 창업자는 이탈리아인이 아닌 그리스 은세공사였습니다.

⚫ 'V' 로고는 고대 로마 라틴 알파벳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 대표 컬렉션 B.zero1은 콜로세움, 모네떼는 실제 고대 동전에서 태어났습니다


1. 창업자는 이탈리아인이 아니었다: 그리스 은세공사의 로마 입성

불가리의 창업자 소티리오스 불가리스(Sotirios Voulgaris)는 1857년 그리스 에피루스 지방의 파라미티아 출신입니다. 이 마을은 발칸 반도에서 가장 큰 은세공 중심지였습니다. 그는 그리스와 튀르크 사이의 분쟁을 피해 이탈리아로 건너왔고, 1881년 나폴리를 거쳐 1884년 로마 비아 시스티나에 가게를 열었습니다. 나폴리의 첫 가게는 도둑이 들어 문을 닫아야 했다고 전해집니다.

1905년에는 지금까지 본점으로 쓰이는 비아 데이 콘도티 10번지로 옮겼는데, 간판에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제목인 '올드 큐리오시티 숍(Old Curiosity Shop)'을 걸어 로마를 찾는 부유한 영어권 여행객을 끌어들였습니다. 처음부터 명품 주얼리 브랜드가 아니라 은 제품과 골동품을 파는 가게였던 셈입니다.


2. 'U'가 'V'로 바뀐 날: 로마에 바친 한 글자

이제 처음 질문의 답입니다. BVLGARI 로고가 처음 쓰인 것은 1934년으로, 도금한 황동 글자가 콘도티 본점 중앙 출입문을 장식하면서였습니다. 고대 로마를 기리기 위해 'U'를 'V'로 바꾼 것입니다. 고대 라틴 알파벳에서는 U와 V를 같은 글자로 썼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개선문이나 신전 비문에 새겨진 글자를 보면 실제로 U 자리에 V가 들어가 있습니다. 영어 단어의 60% 이상, 전문용어의 80% 이상이 라틴어에서 유래했다는 증거는 W라는 글자에도 있습니다. 이 글자를 더블유라고 부르지, 더블 브이라고 부르지 않거든요. 아무튼 1934년, 이 해는 마침 창업 50주년이었고, 본점을 대대적으로 새단장한 시기였습니다.


3. 뱀, 동전, 콜로세움: 로마를 담은 3대 아이콘

세르펜티(Serpenti) – 로마 신화 속 뱀

1940년대 말, 불가리는 손목을 감싸는 뱀 모양의 '세르펜티' 브레이슬릿 시계를 선보였습니다. 뱀은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지혜와 재생의 상징이었고, 이 디자인은 지금까지 불가리의 얼굴로 남아 있습니다.

모네떼(Monete) – 진짜 고대 동전을 담다

'남들은 모르는 이야기'의 백미는 이 컬렉션입니다. 1966년, 창업자의 손자이자 고대 동전 수집가였던 니콜라 불가리가 이 역사의 증인들을 이어 가겠다는 생각으로 첫 모네떼 시계를 만들었습니다. 모조품이 아니라 실제 고대 그리스·로마 동전을 금으로 감싸 주얼리로 만든 것이죠. 최근 모델에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와 예술 후원자로 유명한 율리아 돔나 황후가 새겨진 진품 동전이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말 그대로 2천 년 전 로마 제국의 화폐를 손목에 차는 셈입니다.

B.zero1 – 반지가 된 콜로세움

불가리를 대표하는 나선형 반지 B.zero1은 1999년 새 천 년을 기념해 나왔습니다. 모티프는 콜로세움의 곡선 건축입니다. 반지를 옆에서 보면 층층이 쌓인 원형 경기장의 아치 구조가 떠오릅니다.


4. 할리우드가 사랑한 보석: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클레오파트라'

1950~60년대 '라 돌체 비타' 시절, 로마의 영화 촬영소 치네치타에 모여든 할리우드 스타들이 불가리를 세계적 브랜드로 만들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있었습니다. 영화 〈클레오파트라〉 촬영 중 연인이 된 리처드 버튼은 콘도티 본점에서 선물을 연달아 사 주었는데, 그 시작은 7.40캐럿 에메랄드 반지였습니다. 버튼은 훗날 "나는 그녀에게 맥주를 가르쳤고, 그녀는 내게 불가리를 가르쳤다"는 농담을 남겼습니다.

흥미로운 후일담도 있습니다. 2011년 테일러의 유품 경매에서 불가리가 버튼이 선물했던 사파이어·다이아몬드 목걸이를 590만 달러가 넘는 금액에 되사들였습니다. 자신들이 만든 보석을 다시 '역사'로 소장한 것입니다.


5. 받은 만큼 돌려준다: 스페인 계단 복원

불가리의 로마 사랑은 제품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2014년 불가리는 150만 유로를 기부해 스페인 계단 복원을 맡았습니다. 스페인 계단은 1884년 첫 가게가 있던 비아 시스티나와 지금의 콘도티 본점을 잇는 장소로, 불가리 역사의 한가운데 있는 곳입니다.


6. 콘도티가(街) 본점 방문과 방문팁 

글로만 쓰던 불가리 이야기를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2026년 10월 4일 콘도티 거리 10번지 불가리 본점을 다녀왔습니다.

사진 1: 스페인 계단과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이 정면으로 보이는 콘도티 거리. 오른쪽 건물 벽에 'BVLGARI' 로고가 걸려 있다.

'V' 로고를 실제로 마주하다

코르소가에서 콘도티 거리로 들어서 조금 걷다보면, 거의 스페인 계단에 도달할 즈음 오른쪽 건물 벽에 커다란 'BVLGARI' 글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앞서 설명한 바로 그 'U' 대신 'V'를 쓴 로고입니다. 멀리 스페인 계단 위에는 산타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Chiesa S. Trinità dei Monti)이 보이고, 불가리 매장 입구는 짙은 색 대리석으로 둘러싸여 있어 거리의 다른 매장들과 확연히 다른 무게감이 느껴졌습니다.

위치 자체가 불가리의 역사입니다. 1884년 첫 가게가 있던 비아 시스티나는 스페인 계단 위쪽에, 지금의 본점은 계단 아래 콘도티 거리에 있습니다. 2014년 불가리가 150만 유로를 들여 스페인 계단을 복원한 것도 이 계단이 두 곳을 잇는 장소이기 때문이죠. 사진 한 장에 불가리 140년이 다 담겨 있는 셈입니다.

매장 안의 작은 박물관, '도무스(Domvs)'

매장 안으로 들어가 블로그를 운영한다고 저를 소개하고 양해를 구했더니, 직원분이 친절하게 사진 촬영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사진 2: 본점 내부 전시 공간. 로마 기둥 모양의 은 오브제와 불가리 매거진 'TITOLO 004'.

많은 분이 모르는 사실인데, 본점 안에는 '도무스(Domvs)'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불가리의 헤리티지를 기리기 위해 상설로 마련된 전시 공간입니다. 제가 갔을 때는 'The Genius of Images'라는 전시 안내가 놓여 있었는데, 1960~90년대 불가리 아카이브의 사진과 광고 이미지를 통해 브랜드가 어떻게 시각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왔는지 보여 주는 전시입니다. 무료로 열린 전시라 구매 계획이 없어도 부담 없이 둘러볼 수 있습니다.

제 눈길을 끈 건 유리 진열장 속 은 오브제였습니다. 세로 홈이 파인 모양이 영락없이 로마 신전의 기둥입니다. 그리스 은세공사로 시작한 불가리가 지금도 로마 건축을 디자인 언어로 쓰고 있다는 걸 실물로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선물로 받은 불가리 매거진 'TITOLO 004'

방문 기념으로 불가리가 발행하는 매거진 〈TITOLO〉 4호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TITOLO〉는 불가리의 헤리티지를 깊이 있게 다루는 시리즈로, 1호는 불가리 헤리티지 컬렉션, 2호는 투보가스를 주제로 했습니다. 은빛 표지의 4호는 '예술 후원과 헤리티지'를 주제로,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처음 선보인 불가리 파빌리온, 로마 유적 복원 프로젝트, 니콜라 불가리의 개인 컬렉션 이야기, 그리고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주문했던 은 상자까지, 불가리가 예술과 기억을 어떻게 지켜 왔는지를 담고 있네요. 특히 1960년대부터 이어진 모네떼 작품 네 점을 다룬 꼭지가 있어, 매장에서 본 동전 목걸이와 겹쳐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고대 로마 동전만 있는 게 아니었다


캡션: 동전을 넣은 불가리 목걸이. 오른쪽은 'LIBERTY'와 '1795'가 새겨진 미국 은화, 왼쪽은 미국 대통령 초상이 새겨진 메달.

이번 방문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장면입니다. 본문에서 니콜라 불가리가 고대 동전을 주얼리에 넣으며 모네떼가 시작됐다고 소개했는데, 진열된 목걸이를 자세히 보니 오른쪽 동전에는 'LIBERTY'와 '1795'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미국 초기의 은화로 보입니다. 왼쪽 메달에도 미국 대통령의 초상과 이름이 둘러져 있었고요. 굵은 금 체인과 다이아몬드를 두른 팔각형 프레임은 같은 스타일인데, 로마 동전뿐 아니라 다른 시대·다른 나라의 동전과 메달까지 '역사를 목에 거는' 방식으로 확장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방문 팁 정리

  • 사진은 꼭 허락받고 찍기: 저처럼 먼저 목적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면 직원분들이 대부분 친절하게 응대해 줍니다. 진열 작품을 찍을 때는 플래시를 끄세요.
  • 도무스 전시 먼저 확인하기: 전시는 주기적으로 바뀝니다. 방문 전 불가리 공식 홈페이지나 불가리 호텔 로마 홈페이지에서 현재 전시를 확인하세요.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로 안내되어 있습니다.
  • 늦은 오후에 가기: 제가 찍은 첫 번째 사진처럼 오후 햇살이 콘도티 거리를 비추면 건물과 스페인 계단이 가장 예쁘게 나옵니다.
  • 스페인 계단과 함께 코스로: 계단 위 비아 시스티나(첫 가게 자리)에서 출발해 계단을 내려와 본점으로 오면, 불가리의 140년을 걸어서 따라가는 코스가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불가리는 이탈리아 브랜드인가요, 그리스 브랜드인가요?
그리스 출신 은세공사가 1884년 로마에서 창업한 이탈리아 브랜드입니다. 본사도 로마에 있습니다.

Q. 불가리 로고의 V는 무슨 뜻인가요?
U와 V를 구분하지 않았던 고대 라틴 알파벳을 따른 것으로, 로마에 대한 경의를 담고 있습니다.

Q. 불가리의 대표 컬렉션은 무엇인가요?
뱀 모티프의 세르펜티, 고대 동전을 쓴 모네떼, 콜로세움에서 영감을 얻은 B.zero1이 대표적입니다.


마치며

불가리를 산다는 것은 단순히 보석 하나를 사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 은세공의 전통, 로마 제국의 건축과 화폐, 할리우드의 로맨스가 한 점에 겹쳐 있습니다. 다음에 로마 스페인 계단을 오른다면, 그 아래 콘도티 거리의 'V' 간판을 한 번 올려다보세요. 2천 년의 이야기가 그 한 글자에서 시작됩니다.

📚 참고 자료: 불가리 공식 홈페이지(브랜드 역사·모네떼·문화 후원), 이탈리아 상표 박물관(Museo del Marchio Italiano), 위키피디아 'Bulgari'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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