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9일 일요일

바티칸박물관, 구석의 낡은 돌덩이, 사도 바오로의 2천 년 전 비밀을 풀다

 내가 진행하는 바티칸박물관은 아주 조용하고 한적한 '피오 크리스티아노(Pio Cristiano)' 전시관의 한구석에서부터 시작한다. 화려한 고대~르네상스의 조각상도, 아름다운 르네상스 명화들도 아닌 초대교회 시절,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했던 석관, 비석, 비문 등이 있는 바로 이곳에서부터 시작한다. 이곳에는 알려지지 않은 주옥같은 작품이 있고, 거기에 얽힌 이야기가 즐비하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사도 바오로에 얽힌 비문 하나를 살펴보려고 한다. 


📜 바티칸박물관에서 본 이상한 돌비석 

먼저 이 사진을 보면, 위쪽의 '검은 돌'과 아래쪽의 '하얀 대리석 명패'로 나뉜다.

1. 위쪽 검은 돌은 "나바테아어 비문"인데, 이 꼬불꼬불한 글씨는 고대 아람어의 일종인 '나바테아어(Nabataean)'로 적힌 실제 묘비명이다. 요르단의 유명한 고대 도시 '페트라(Petra)'를 지배했던 나바테아 왕국의 언어다.

2. 아래쪽 하얀 대리석의 라틴어 해설은 바티칸 측에서 이 돌이 무엇인지 관람객을 위해 라틴어로 친절하게 달아둔 설명이다. 오늘날 나바테아어를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테니까...  나만 해도 꽝!!

INSCRIPTIO SEPVLCRALIS NABATHEA (나바테아의 묘비명)

ANNVM INDICANS XLVI REGIS ARETAE (아레타스 왕의 재위 46년을 가리키고 있다.)

DE QVO MEMINIT PAVLVS APOSTOLVS (사도 바오로가 [그의 서신에서] 언급했던 바로 그 왕이다.)

QVI EODEM ANNO XXXVII P·C· (바오로는 같은 해인 기원후 37년에)

AD CHRISTVM EST CONVERSVS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 역사적 의미: 사도 바오로가 쓴 성경(고린도2, 11장 32-33절)을 보면, "다마스쿠스에서는 아레타스 임금의 총독이 나를 잡으려고 그 성을 지키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나를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 난 창문으로 내려 주어서 그의 손아귀를 벗어난 일고 있습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돌은 그 '아레타스 임금(Aretas IV)'이 실존 인물이었고, 그의 재위 46년이 기원후 37~38년경이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다시 말해서, 이 돌덩이 하나 덕분에 역사학자들은 사도 바오로가 언제 다마스쿠스에서 탈출했고, 언제 개종했는지 '정확한 연도'를 계산해 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 나바테아의 묘비명, 로마에 오다

사진 속 비문을 보면, 위쪽 돌에 마치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꼬불꼬불한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고대 요르단 지역, 유명한 붉은 바위 도시 '페트라(Petra)'를 지배했던 나바테아 왕국의 언어다.

그렇다면, 그곳 중동의 사막에 있어야 할 비문이 왜 바티칸에 와 있을까? 그 비밀은 아래쪽 하얀 대리석 명패에 라틴어로 친절하게 적혀 있다.

"나바테아의 묘비명. 사도 바오로가 언급했던 아레타스 임금의 재위 46년을 가리키고 있다..."

그래서 저 무거운 중동의 돌이 어떻게 로마 바티칸까지 왔는데? 이 물음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 요르단의 무덤 돌, 로마로 오기까지의 여정

  1. 발견: 이 돌은 원래 1889년, 요르단의 마다바(Madaba) 지역에서 현지인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원래 '아르토벨(Artobel)' 또는 '이타이벨(Itaybel)'이라는 이름의 나바테아 왕국 군사 사령관을 기리는 거대한 가족 묘비의 일부로 있던 돌이었다.

  2. 이동과 기증: 이 비문의 가치를 알아본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청 소속의 사제들이 이 돌을 확보했다. 그리고 바로 그해(1889년)에, 당시 교황이었던 레오 13세(Leo XIII)에게 선물로 기증하면서 바티칸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3. 운반의 비밀: 재미있는 사실은, 무거운 현무암 덩어리를 요르단에서 로마까지 배와 마차로 운반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이동을 쉽게 하려고 원래 크기보다 돌의 부피를 깎아내고 깨뜨려 줄인 상태라는 점이다. (사진을 보시면 돌의 가장자리 단면이 거칠게 잘려나간 것처럼 보이는데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 성서 고고학자들을 흥분시킨 대발견

바티칸에 이 돌이 도착한 후, 프랑스의 유명한 성서 고고학자 마리 조제프 라그랑주(Marie-Joseph Lagrange) 등 학자들이 이 나바테아어 비문을 해독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이방인 사령관의 묘비인 줄 알았는데, 해석을 해보니 마지막 줄에 "아레타스 왕 46년"이라는 엄청난 문구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학자들은 성경 속 사도 바오로의 탈출 사건에 등장하는 아레타스 왕과 연도가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환호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성경과 연관이 있는 돌이라서 비싼 돈을 주고 사 온 것이 아니라, 기증받은 고고학 유물을 연구하다 보니 그리스도교 역사상 엄청난 가치를 지닌 '시간의 열쇠'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바티칸 측에서 관람객들이 이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아래에 친절하게 하얀색 대리석으로 라틴어 해설 명패를 추가로 달아둔 것이다.

다시 바오로 이야기로 돌아가서....


🧺 광주리를 타고 도망친 사도 바오로

신약성경 '코린도2, 11장'을 읽어보면 아주 흥미로운 첩보 영화 같은 장면이 등장한다.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청년 바오로가 극적으로 회심한 후, 다마스쿠스(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 이때 성경은 "아레타스 임금의 총독이 바오로를 잡으려고 성을 지키고 있었고, 바오로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광주리에 담겨 성벽을 내려와 겨우 목숨을 건졌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오랫동안 역사가들은 궁금했다. "도대체 이 아레타스 왕은 언제적 사람이며, 바오로가 광주리를 타고 도망친 그날은 정확히 몇 년도일까?"


⏳ 잃어버린 '시간의 퍼즐'을 맞추다

바로 그때,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이 투박한 돌덩이가 모든 미스터리를 해결해 주었다! 이 비문에 적힌 '아레타스 왕 재위 46년'이라는 기록을 로마의 역사 달력과 대조해 본 결과, 그 해가 바로 서기 37년(AD 37)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바티칸 박물관 구석에 놓인 이 낡은 돌은 단순한 묘비가 아니다. 이 돌 덕분에 우리는 사도 바오로가 서기 37년경, 다마스쿠스를 탈출했고, 그의 초기 선교 여행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뼈대를 완벽하게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종교적 믿음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성경의 기록이, 명백한 '역사적 팩트'로 증명되는 경이로운 순간이다.


☕ 로마, 모든 돌맹이에 스토리가 깃든 도시

투어를 여행을 하다 보면 겉보기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먼저 시선이 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로마라는 거대한 박물관에서는 길가에 채이는 돌덩이 하나도 2천 년의 시간과 사람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바티칸박물관에 다녀온 날, 

2천 년 전, 

칠흑 같은 밤에 광주리를 타고 성벽을 내려오던 바오로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바티칸 곳곳에 숨겨진 다양한 라틴어 비문과 그 속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번역하고 해설해 주는 다음 영상도 참고하면 로마와 바티칸 여행 준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바티칸 벽면에 새겨진 라틴어 비문들의 숨겨진 의미 번역

바티칸박물관, 구석의 낡은 돌덩이, 사도 바오로의 2천 년 전 비밀을 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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