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8일 수요일

[바티칸박물관 관람 팁] 로마, 성 베드로 광장 땅 속에서 깨어난 13세기 아르메니아 십자가 비석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 앞 광장은 천재 조각가 베르니니가 설계한 걸로 유명하다. 거대한 회랑(콜로네이드) 속으로 들어가면 돌 기둥으로 이루어진 숲에 있는 것 같고, 그곳을 벗어나 광장으로 나오면 두 팔을 활짝 벌려 아픈 세상을 안아주는 듯한 경이로운 공간 말이다. 17세기, 베르니니가 이 거대한 광장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 내려갔을 때 흙더미 속에서 아주 낯설고 신비로운 돌기둥 하나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오늘은 바티칸박물관 내 사도 도서관(Biblioteca Apostolica) 회랑 한구석에 조용히 전시되어 있는, 바로 그 '비밀의 돌기둥'에 얽힌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 로마에 새겨진 이방인들의 기도, 카치카르(Khachkar)

사진 속 대리석 비석을 가만히 들여다볼면, 중앙의 커다란 십자가 주변에 마치 암호처럼 붉은색 문자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로마 전역에 널려있는 라틴어도, 그리스어도 아니다. 이것은 바로 서기 301년, 세계 역사상 가장 먼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선포했던 민족, '아르메니아'의 고유 문자다.

이 비석의 정체는 1246년에 만들어진 '카치카르(Khachkar)', 즉 아르메니아 전통 양식의 십자가 돌이다. 명패의 기록을 해석하면, 13세기 로마에 살고 있던 아르메니아 공동체가 '메히타르(Mechitar)'라는 인물과 그의 부모님의 영혼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며 세운 묘비이자 위령비라는 것이다. 타국 땅인 로마에 묻힌 가족을 위해, 그들은 가장 자신들다운 문자와 십자가를 정성껏 대리석에 새겨 넣었던 것이다.


🏛️ 성 베드로 광장의 흙먼지 속에서 다시 숨을 쉬다

세월이 흘러 이 비석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땅속에 묻혔다. 그리고 약 400년이 지난 1657년, 성 베드로 광장을 대대적으로 공사하던 베르니니의 인부들에 의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빛을 보게 되었다. 당시 이 근처에는 '아르메니아인들의 성 야고보 성당'이 있었다고 한다. 로마 제국의 심장부이자 가톨릭의 총본산인 바티칸 바로 코앞에 동방에서 온 이방인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는 명백한 역사적 증거인 셈이다.


🤝 포용의 도시 로마, "이 십자가는 축성되었다"

이 작품에서 내가 가장 감동하는 부분은 비석 맨 아래쪽 십자가 받침대 부분이다. 붉은 아르메니아어 사이에 검은색으로 아주 작게 라틴어가 조각되어 있다.

"HEC CRVX CONSECRATA EST" (이 십자가는 축성되었다)

동방 정교회에 뿌리를 둔 아르메니아인들의 낯선 십자가를 이단이라고 배척하거나 부수지 않고, 가톨릭의 심장 바티칸에서 "이것 역시 거룩하게 축복받은 그리스도교의 십자가"라고 라틴어로 공식 도장을 찍어준 것이다. 모든 길이 통하고, 모든 문화를 품어냈던 로마 특유의 거대한 포용력이 이 작은 문장 하나에 응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 예술 너머의 사람을 바라보며

우리는 보통 바티칸에서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베르니니 같은 거장들의 이름만 기억한다. 하지만 화려한 명작들 사이, 한적한 회랑 한켠에는 1246년 이국 땅 로마에서 가족을 잃고 슬퍼하며 정성껏 붉은 글씨를 새겨 넣었던 아르메니아인 '메히타르' 가족의 눈물어린 돌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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