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날, 성 금요일이다. 가장 깊은 침묵과 슬픔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이다. 이 날을 가장 상징적으로 담아낸 작품이 바로 24세의 청년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불멸의 걸작, <피에타(Pietà)>다. 베드로 대성당 우측 첫 번째 "피에타 경당"에 있다. 오늘 아침에는 경당 내부에 불이 꺼지고 그 앞에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무릎 꿇고 있던 순례자들이 그나마 있던 주변의 소음마저 모두 흡수하는 듯했다.
1. '피에타', 그 단어에 담긴 묵직한 울림
이탈리아어 'Pietà(피에타)'는 단순한 '슬픔'을 뜻하지 않는다. 라틴어 'Pietas'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자비', '연민', 그리고 '신에 대한 경건한 의무'라는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우리의 "한(恨)"처럼 딱 떨어지게 번역할 수 없는 단어라고 하겠다.
십자가에 못박혀 생명을 잃은 아들 예수를 품에 안은 성모 마리아를 표현했다. 이 장면은 복음서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중세 이후 신앙 안에서 깊이 발전되어 온 이미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감정의 깊이다. 마리아는 울부짖지 않는다. 절망에 무너지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아들에게 벌어진 이 처절한 운명을 전적으로 받아들인다.
이 깊은 침묵이야말로 피에타가 가진 가장 강력한 언어다.
2. 차가운 돌에 새겨진 완벽한 아름다움 속의 고통
이 작품을 현장에서 직접 보면,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너무도 아름답다!"
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질감의 대비가 완벽하다. 미켈란젤로는 딱딱하고 차가운 카라라(Carrara) 대리석을 마치 살아있는 살결처럼 빚어냈다. 여기서 한 가지를 깨닫게 된다. 이 아름다움은 단순한 미적 완성이 아니라, 고통을 견디는 방식이라는 것을.
마리아의 얼굴을 젊고 평온하다.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고요하다. 축 늘어진 아들의 몸은 생기를 잃었고, 그를 받치고 있는 어머니의 풍성한 옷자락은 마치 파도처럼 물결치며 아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고 있다. 죽음의 경직됨과 어머니의 포용력이 이 대리석 한 덩어리 안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미켈란젤로는 슬픔을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그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절제했다. 그리고 그 절제 속에서 더 깊은 감정을 끌어냈다.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의 인간 이해이자, 동시에 신앙의 언어임을 잘 보여주었다.
당시 사람들은 비판했다. "아들이 죽었는데 어머니가 왜 이렇게 젊으냐"고. 이에 미켈란젤로는 "순결한 여인은 늙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가브리엘 대천사의 "알림(L'Annunciazione)"에 FIAT라고 응답한 바로 그 순간, 즉 인류 구원에 동참한 그녀의 응답은 시공에 의해 훼손되어질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성모의 젊은 얼굴은 육체적인 나이가 아니라, 죄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영혼의 얼굴이자, 하느님의 손길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긴 순명의 상징이다.
3.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
피에타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이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성 금요일은 해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우리를 침묵 속에 머물게 한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고통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그 자체를 바라보게 된다.
마리아는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다만 받아들인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삶에서는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
4. 우리 시대에 피에타가 던지는 의미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이 이유를 찾는다. 전쟁, 갈등, 상실 등.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해 설명을 원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설명할 수 없는 아픔이 있고, 설명이 상처를 치유하지도 못한다.
성 금요일이 매년 반복되는 이유는, 우리가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고통을 마주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피에타는 말한다.
-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 그러나 그 앞에서 무너질 필요도 없다
- 우리는 그것을 품을 수 있다
5. 침묵 속에서 완성되는 믿음
피에타는 외치지 않는다.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저 한 장면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그 장면은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성 금요일의 본질도 같다. 소리 없는 날, 그러나 가장 많은 것을 말하는 날이다.
오늘, 우리는 말보다 침묵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피에타가 보여주는 것처럼 고통을 품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이 지금까지도 살아 있는 이유다.
글을 마치며: 그대의 마음에도 '피에타'가 깃들기를
성 금요일은 우리 삶의 고통과 상처를 잠시 내려놓고, 누군가의 희생과 사랑을 기억하는 날이다.
성모님의 무릎 위에서 안식을 찾은 예수님처럼, 오늘 하루 여러분의 지친 마음도 이 예술이 주는 위로 안에서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란다.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그대에게 이 평온한 슬픔을 전한다.
Buona Pasqua a tutti!
한 가지 팁! 성모님의 가슴을 가로지르는 띠를 자세히 보면, '피렌체 사람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제작함'이라고 쓴 서명이 있다. 미켈란젤로의 수많은 걸작 중 유일하게 서명이 있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