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을 방문하면, 입구에서 시선을 강탈하는 화려한 제복의 멋진 청년들이 있다. 노랑, 파랑, 빨강이 교차된 중세풍의 옷을 입고, 긴 미늘창을 든 채 조각상처럼 서 있는 이들은 바로 교황의 최측근 경호 부대인 '스위스 근위대(Pontifical Swiss Guard)'다. 이번에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기정사실처럼 떠도는 제복에 얽힌 소문의 진실과 왜 교황을 이탈리아인이 아닌 '스위스 청년'들이 지키고 있는지 그 가슴 뜨거운 역사를 파헤쳐 보겠다!
✂️ 팩트체크: 미켈란젤로는 제복을 디자인하지 않았다!
바티칸에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는, "저 옷은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것이 맞는가?" 하는 것이다. 정답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미켈란젤로가 했다는 둥, 라파엘로가 했다는 둥 르네상스의 거장들이 디자인했다는 이야기는 낭만적인 헛소문(Myth)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가 보는 이 화려하고 독특한 제복을 디자인한 사람은 1914년 스위스 근위대장이었던 '쥘 르퐁드(Jules Maxime Repond, 1853–1933)'이다.
물론 쥘 르퐁이 이 제복을 하늘에서 뚝딱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그는 라파엘로의 프레스코화 등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을 꼼꼼히 연구하여, 당시 귀족들과 병사들이 입던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냈다.
아래 그림: 라파엘로의 <볼세나의 기적> 중 우측하단에 무릎을 꿇고 있는 근위병
제복의 색상에도 깊은 의미가 숨어 있다. 파란색과 노란색은 근위대를 처음 창설한 율리오 2세 교황(델라 로베레 가문)의 상징색이고, 빨간색은 메디치 가문 출신인 레오 10세 교황을 상징한다. 즉, 이 제복은 르네상스 예술과 교황 가문의 역사가 융합된 20세기의 걸작인 셈이다!
디자이너 레퐁드는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16세기 스위스 복식을 반영하면서도 군사 훈련에 적합한 새로운 제복 디자인 연구에 오랫동안 몰입했다. 그의 연구결과는『교황청 스위스 근위대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복식(Le costume de la Garde suisse pontificale et la Renaissance italienne)』(1917년 출판)에 담았다.
🧵 154조각의 옷감으로 만든 '고급 맞춤복(Haute Couture)'
제복은 단순한 유니폼이 아니다. 스위스 근위병 한 명 한 명의 체형에 맞추어 철저히 수작업으로 제작한다. 숙련된 장인들이 최고급 원단과 소재로 주문 제작하는 예술 작품 수준의 의상이다.
제복 한 벌을 만들기 위해 무려 154개의 천 조각이 필요하며, 제작에만 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게다가 모자와 장신구까지 모두 합치면 옷의 무게만 약 3.6kg에 달한다. 한여름 로마의 불볕더위 속에서도 이 두껍고 무거운 제복을 입고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교황청을 지키는 근위병들의 인내심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 왜 이탈리아가 아니라 '스위스' 근위대일까?
그렇다면 왜 바티칸의 심장부를 스위스인들이 지키고 있을까? 과거 스위스는 척박한 알프스산맥에 갇힌 가난한 나라였고, 젊은이들은 생계를 위해 전 유럽으로 용병을 나가야만 했다. 그들은 1506년 율리오 2세 교황의 부름을 받고 바티칸에도 입성했다.
스위스 근위대가 영원한 전설이 된 것은 1527년 5월 6일, 신성 로마제국의 군대가 로마를 무자비하게 짓밟았던 '로마 대약탈(Sack of Rome)' 때였다. 다른 용병들은 모두 도망쳤지만, 스위스 근위병 189명은 클레멘스 7세 교황이 천사의 성(산탄젤로 성)으로 피신할 수 있도록 끝까지 남아 적들과 싸웠다. 교황은 해산을 명령하고 신성 로마제국의 군대 손에 목숨을 맡겼지만, 스위스 근위병은 147명은 그 자리에서 충성맹세를 하고 전원이 장렬하게 전사함으로써 교황의 목숨을 구했다.
이들의 피눈물 나는 충성심에 감동한 교황청은, 이후 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직 스위스 청년들에게만 교황의 경호를 맡기고 있다. 지금도 매년 5월 6일이 되면, 로마 대약탈 희생자들을 기리며 신입 스위스 근위병들의 충성 맹세식이 엄숙하게 거행된다.
☕ 예술과 충성이 빚어낸 바티칸의 살아있는 랜드마크
그러니까 스위스 근위병은 단순히 예쁜 제복을 입은 경비병이 아니라, 500년의 무거운 의리와 역사를 어깨에 짊어진 청년들인 셈이다. 그들이 있어 바티칸은 더 아름답고 든든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