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화단을 가이드 하다보면, 꼭 알아야 할 두 사람이 있다. 바로 티치아노와 틴토레토다. 베네치아의 눈부신 햇살과 역사의 숨결 위로 곤돌라가 유유히 떠다니는 낭만적인 풍경, 그 너머에서는 16세기 베네치아 화단에서 벌어진 치열하고 독기 어린 '예술 전쟁'이 있었다. 르네상스의 거장 티치아노(Tiziano)와 그에 맞선 젊은 반항아 틴토레토(Tintoretto)가 한판 붙은 것이다. 오늘은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마치 영화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리와 모차르트를 연상시키는 두 남자의 애증 섞인 4가지 결정적 국면을 한번 들여가 보자.
1. 단 10일 만에 끝난 '악연'의 시작: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 하지만..."
사건의 발단은 틴토레토가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티치아노의 공방에 입성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티치아노는 유럽의 모든 군주가 줄을 서서 그림을 기다리던 '회화의 군주'였다. 초상화를 너무 잘 그려 살아서 모든 영광과 명예를 다 누린 몇 안 되는 화가로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
어느 날, 티치아노는 공방 구석에 놓인 신입생 틴토레토의 드로잉 몇 점을 목격하게 된다.
기록에 따르면, 티치아노는 그 그림들을 보자마자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당장 저 녀석을 내보내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들어온 지 겨우 열흘 밖에 안 되었는데 말이다. 티치아노는 틴토레토의 거친 붓질에서 자신의 정돈된 질서를 무너뜨릴 '파괴적인 천재성'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거장이 느낀 본능적인 위협, 그것이 아마도 이후 약 50년 동안 벌어지는 전쟁의 서막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2. 도발적인 헌사? "미켈란젤로의 소묘와 티치아노의 색채를!"
공방에서 쫓겨난 청년 틴토레토는 좌절하는 대신, 자신의 작업실 벽에 유명한 문구를 적어 붙였다.
"Il Disegno di Michelangelo e il Colorito di Tiziano" (미켈란젤로의 소묘와 티치아노의 색채를!)
이것은 단순한 목표가 아니라 선전포고였다. 당시 베네치아 화파의 핵심인 '색채(Colorito)'의 정점에 있던 스승을 인정하면서도, 스승이 그토록 경계하던 피렌체·로마 화파의 거장 미켈란젤로의 '소묘(Disegno)'를 결합하겠다는 야망이었다.
그는 티치아노를 증오했지만, 역설적으로 티치아노가 이룩한 색의 세계를 가장 완벽하게 계승하고 싶어 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스승은 제자를 거부했지만, 제자는 그를 스승으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3. 노장의 '견제'와 청년의 '덤핑': 시장을 뒤흔든 공격적 마케팅
티치아노는 권력을 이용해 틴토레토가 공공기관의 일감을 맡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방해했다. 이에 틴토레토는 오늘날의 기업들도 울고 갈 '공격적 마케팅'으로 맞불을 놓았는데, 그것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하나는 파격적인 저가 공세로, "재료비만 주면 그려주겠다" 혹은 "티치아노보다 훨씬 싸게 하겠다"라며 시장을 잠식했다. 다른 하나는, 전광석화 같은 속도전이었다. 티치아노가 한 작품을 몇 년씩 다듬을 때, 틴토레토는 폭풍처럼 그림을 그려냈다. 오죽하면 별명이 '일 푸리오소(Il Furioso, 미친 듯이 거친 자)'였을까.
티치아노는 틴토레토의 거친 터치를 보며 "완성도 떨어지는 사기극"이라 비난했지만, 대중들은 그 역동적인 에너지에 서서히 매료되기 시작했다.
4. 산 로코 공모전: "돈은 안 받습니다, 이미 다 그렸거든요"
두 사람의 라이벌전이 정점에 달한 사건은 바로 '산 로코 회당(Scuola Grande di San Rocco)' 공모전이었다. 회당 측에서 천장화를 그릴 화가를 뽑기 위해 밑그림을 제출하라고 공고를 냈다.
다른 화가들이 티치아노의 눈치를 보며 공들여 스케치를 준비할 때, 틴토레토는 남몰래 이미 완성된 거대한 캔버스를 제작해 공모전 당일 새벽, 천장에 몰래 설치해 버렸다!
심사위원들이 당황해하자 그는 회심의 한 방을 날렸다. "성 로코(San Rocco) 성인을 위해 그렸으니, 나는 이 그림값을 받지 않겠습니다." 규정상 기부받은 작품은 거절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한 천재적인 '꼼수'이자 압도적인 '열정'이었다. 이 사건으로 티치아노는 뒷목을 잡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 덕분에 '베네치아의 시스티나 성당'이라 불리는 위대한 걸작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보자.
1. 붓질의 속도가 만든 '현대성' 티치아노의 그림이 매끈하게 닦인 보석 같다면, 틴토레토의 그림은 거친 붓 자국이 그대로 살아있다. 티치아노는 이를 '성의 없음'이라 비판했지만, 훗날 인상주의 화가들은 틴토레토의 이 '거친 손맛'에서 현대 회화의 시작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2. 조명의 마술사, 틴토레토 틴토레토는 그림을 그리기 전, 작은 인형 모델을 박스에 넣고 촛불을 비추어 빛의 각도를 연구했다. 그 결과 티치아노의 평온한 빛과는 전혀 다른, 연극 무대처럼 드라마틱하고 강렬한 명암 대비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바로 뒤이어 등장할 '바로크 시대'의 예고편이었고, 더 멀리는 '빛의 입자'를 포착한 인상주의의 서막이었다.
티치아노가 베네치아의 가장 찬란한 **'낮'**을 완성한 군주였다면, 틴토레토는 그 낮을 무너뜨리고 번뜩이는 번개와 함께 찾아온 **'밤'**의 혁명가였습니다. 두 사람의 불화가 없었다면, 우리는 어쩌면 이토록 역동적인 베네치아의 예술사를 갖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베네치아 여행 중에 이들의 그림을 마주하신다면, 캔버스 너머로 느껴지는 두 거장의 숨 막히는 기 싸움을 꼭 한 번 느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