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박물관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 고요하게 빛나는 숨겨진 보석, 아니마 문디(Anima Mundi) 전시관에는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있는 세계 최대 불교 유적 "보로부두르(Borobudur)"의 거대한 정밀 모형이 있다. 가톨릭교회의 총본산에서 왜 이 거대한 불교 사원 모형을 품고 있을까?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진흙 속에서 피어난 거대한 우주, 보로부두르
8~9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사원은 피라미드 형태를 띤 거대한 석조 건축물이다. 바티칸에 전시된 이 정교한 모형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 사원이 어떤 의미를 품고 지어졌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사원은 힌두교와 불교에서 우주의 중심이라 믿는 '수미산(Mount Meru)'을 상징하는 동시에, 우주의 진리를 그린 기하학적 도형인 '만달라(Mandala)'의 형태를 띠고 있다. 네모난 대지(땅) 위에 둥근 원(하늘)이 층층이 겹쳐진 구조다. 흥미롭게도 이 사원은 과거 말라버린 호수 한가운데 지어졌다고 하는데, 이는 불교에서 진흙 속에서도 맑게 피어나는 '물 위의 연꽃(floating lotus)'을 형상화한 거라고 한다.
위 사진 출처: 위키백과
🚶♂️ 깨달음을 향한 3단계의 영적 순례길
보로부두르는 건물 자체가 거대한 철학책이다. 순례객이 맨 아래층에서부터 빙글빙글 돌며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가는 행위 자체가, 세속적 고통에서 벗어나 영적인 깨달음(Enlightenment)으로 나아가는 수행의 과정이 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이 영적 여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1. 카마다투 (Kamadhatu) : 욕망의 세계 가장 밑바닥 기단부는 우리가 사는 세속의 세계를 뜻한다. 이곳을 채우고 있는 조각상이나 부조들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번뇌, 그리고 인과응보(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갇혀 윤회하는 인간의 고통스러운 삶을 묘사하고 있다. (아래사진 출처: 위키백과)
2. 루파다투 (Rupadhatu) : 형상의 세계 (정화의 단계) 계단을 따라 올라가 만나는 중간의 5층 테라스는 욕망은 버렸지만 아직 물질적 형태가 남아있는 세계다. 이곳의 벽면에는 부처의 전생 이야기(본생경)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역사적 과정들이 수천 개의 돋을새김(부조) 조각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순례자들은 이 길을 걸으며 마음을 정화한다. (아래사진 출처: 위키백과)
3. 아루파다투 (Arupadhatu) : 무형의 세계 (완벽한 열반) 마침내 도달한 최상층부의 3개 층은 이전까지의 네모난 형태를 벗어나 완벽한 원형 테라스로 바뀐다. 모든 형태의 욕망과 고통이 사라진 완전한 깨달음의 상태, 즉 '최고의 열반(Nirvana Supreme)'을 상징한다. 이곳에는 종 모양의 수많은 스투파(불탑)들이 세워져 있고, 그 안에는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자세(dharmachakra mudra)를 한 부처상들이 고요히 앉아 우주의 진리를 설파하고 있다. (아래사진 출처: 위키백과)
☕ 다름을 존중할 때 비로소 열리는 '세상의 영혼'
바티칸 박물관이 이 거대한 불교 사원 모형을 소중하게 전시하고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인간이 신과 우주의 진리를 찾기 위해 걸어온 영적인 여정은 종교의 장벽을 뛰어넘어 그 자체로 숭고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니마 문디'라는 이름처럼, 타인의 신앙과 문화를 존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진짜 영혼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가톨릭의 중심에서 불교의 위대한 깨달음을 마주하고, 종교를 넘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을 다시금 배워간다. 다름을 포용하는 넓은 시선으로,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의 삶에 맑은 연꽃 한 송이가 피어나기를 두 손 모아본다. 🌿✨ (아래사진 출처: 위키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