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두칼레 궁전 Palazzo Ducale의 가장 웅장한 공간, 대회의실(Sala del Maggior Consiglio)에 들어서면 우리는 서양 미술사상 가장 거대한 '시각적 충돌'을 목격하게 된다. 정면에는 벽을 가득 채운 틴토레토의 <천국(Paradiso)>가 있고, 고개를 들면 천장에는 베로네세의 <베네치아의 찬미(Apoteosi di Venezia)>가 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베네치아’를 이야기하는 두 거장의 작품이다. 같은 시대에 함께 베네치아에서 활동했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두 거장의 예술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틴토레토: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고독한 천재'의 에너지
나는 개인적으로 틴토레토를 생각하면 왠지 카라바조가 떠오른다. 비운의 고독한 천재라는 점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베네치아의 카라바조'라고 말하곤 한다.
이 그림만 해도, '천국'이라는 주제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어둡다. 500명이 넘는 성인이 '성모의 대관식'을 중심으로 동심원 구도로, 빛의 소용돌이 속에 천사, 선지자, 사도, 성인들이 공간을 압도하고 있다. 거대한 빛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이 장면은 질서보다는 틴토레토 특유의 '격정'에 가깝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이 그림은 가로 22,6m, 세로 9,1m의 거대한 캔버스화다. 대회의실 정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실 틴토레토는 베네치아 화단에서 평생을 '아웃사이더'로 살았던 인물이다. 거장 티치아노의 공방에 들어갔다가 열흘 만에 쫓겨났고, 그 바람에 독학으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야 했다. 그의 좌우명은 "미켈란젤로의 소묘와 티치아노의 색채"였지만, 결과물은 그들과 전혀 달랐다.
이탈리아어로 '틴토레토'는 틴토레 tintore, 즉 '옷감을 염색하는 사람'의 애칭이다. 아버지가 염색공. 틴토레이고, 그 아들이었기에 틴토레토, 곧 '염색공집 아들'이다. 원래 이름은 야코보 로부스티(Jacopo Robusti)다. 그러니 태어나자마나 색에 대한 감각은 자연스레 익혔을 확률이 크다.
그의 <천국>을 보라. 이 그림을 그릴때 그의 나이는 이미 70세가 넘었다. 그런데도 이렇듯 거칠고 격정적인 붓질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이 미완성이라 비난했지만, 틴토레토에게 회화는 매끄러운 장식이 아닌 '영혼의 투쟁'이었다. 그의 어두운 명암법(Chiaroscuro)은 인간 내면의 고뇌와 신비주의를 극대화하는 중요한 장치였다. 그로써 관객을 영적 신비로 인도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여기 정치 회의실에 이 그림이 있을까? 여기서 함의하는 것은 베네치아 공화국이 추구하는 완벽한 질서와 화합을 천상의 모습에 투영함으로써 베네치아를 지상 천국, 새 예루살렘으로 읽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당시 베네치아의 정치인들에게는 그들의 결정이 하느님의 섭리에 일치해야 한다는 도덕적 압박과 자부심을 갖도록 한 걸로 추정된다. 베네치아 시민들이 꿈꾸었던 가장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이 곧 천국의 모습이니까.
2. 베로네세: 찬란한 이상으로서 베네치아를 노래하다
반면에 천장을 장식한 베로네세의 시선은 완전히 달랐다. 베네치아 귀족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던 '엘리트 화가'였던 만큼, 그는 베네치아의 풍요로움을 누구보다 우아하고 화려하게 그려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그가 천장에 그린 <베네치아의 찬미>는 베네치아를 여신으로 의인화하고, 그 주변에 신들의 미덕을 배치했다. 여기서 베네치아는 신의 일부가 아니라, 스스로 빛나는 존재, 곧 하나의 이상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베네치아 그 자체가 완벽한 국가다"라는 것이다. 베로네세 특유의 밝은 색채와 안정된 구도는 불안이나 긴장 대신, 조화와 풍요를 강조한다. 그에게 베네치아는 현실이 아니라, 이상화된 '완전한 공화국'이었다.
틴토레토의 빛이 '어둠 속의 광채'라면, 베로네세의 빛은 '눈부신 대낮의 햇살'이다. 투명한 은빛 광채가 도는 그의 색채는 베네치아 여신을 지상 최고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화려한 비단 옷감, 장엄한 대리석 기둥, 낙천적인 시민들의 모습은 베네치아가 누렸던 지상의 영광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그에게 예술은 고뇌가 아닌 '찬란한 축제'였다.
3. 두 거장이 남긴 베네치아의 정신
한 공간에서 마주하는 이 두 작품은 베네치아라는 국가가 가졌던 양면성을 상징한다. 틴토레토의 벽화가 인간의 구원과 신을 향한 처절한 갈망을 이야기한다면, 베로네세의 천장화는 지상에서 이룩한 공화국의 자부심과 번영을 웅변한다. 그러니까 이 회의실은 두 작품으로 단순히 장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화국의 이념과 권력을 시각적으로 선언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틴토레토의 고독한 붓질이 훗날 인상주의와 표현주의의 씨앗이 되었다면, 베로네세의 화려한 연출은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의 화려한 꽃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 대회의실은 단순히 그림을 보는 곳이 아니라, 고뇌하는 인간(틴토레토)과 환희하는 인간(베로네세)이 만나 빚어낸 역사적 화음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마다 이 공간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다를 것이다. 그 마음의 소리에 한 번 조용히 귀 기울여 보기를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