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박물관의 숨은 보석, 피오 크리스티아노 미술관(Museo Pio Cristiano)으로 가 본다. 오늘 우리가 함께 할 이 눈부신 대리석 석관은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의 정수이자, 로마의 역사가 이교도에서 그리스도교로 넘어가는 거대한 전환점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료다.
그 장대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먼저 이 거대한 석관을 한 번 찬찬히 살펴보기를 권한다. 정교하게 새겨진 조각들에서 무엇이 느껴지는가? 작품은 서기 359년에 제작된 '유니우스 바수스의 석관(Sarcophagus of Junius Bassus)'다.
당시 로마의 시장(Praefectus Urbi)이었던 유니우스 바수스는 죽기 직전에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석관은 그가 죽음을 맞이하며 자신의 신앙과 부활에 대한 희망을 기록한 마지막 유언장과 같은 것이다.
1. 대리석에 새겨진 신구약의 하모니
이 석관의 가장 큰 특징은 전면이 상하 2단으로 나뉘어 있고, 각 단은 5개의 칸, 총 10개의 장면에 다양한 인물이 부조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이러한 ‘2단 구성’은 후기 로마 석관에서 자주 나타나는 특징으로, 제한된 공간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한 일종의 시각적 전략이다. 각 장면은 기둥으로 구획이 나뉘어 있고, 이는 마치 하나의 건축 무대처럼 보이게 하는 동시에 각각의 장면이 독립된 서사를 가진다는 것을 암시한다. 기둥들 사이에 배치된 스토리는 마치 연극 무대처럼 구성되었는데,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주요 사건들을 교차로 배치하여 '예언과 이루어짐'이라는 그리스도교적 교리를 시각적으로 완성한 것이다.
상단에는 여러 인물들이 서로 대화하거나 특정한 행동을 하는 걸로 묘사되어 있다. 인물들은 대부분 토가를 입고 있어 로마 시민 혹은 철학자, 또는 성경 속 인물로 해석된다. 후기 로마 그리스도교 석관에서는 구약과 신약의 장면들이 혼합되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중앙에 있는 인물은 권위 있는 자세와 주변 인물들의 시선 집중을 통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수염이 없는 젊은 그리스도가 하늘을 상징하는 로마의 신 '코엘루스(Coelus)'의 머리 위에 발을 얹고 그를 보좌하여 앉아 있다. 그리스도가 온 우주의 통치자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단에는 더 상징적인 장면들이 눈에 띈다. 좌측, 나무와 함께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담과 하와’로 추정된다. 두 인물의 나체 표현과 나무의 존재는 선악과 이야기와 밀접하게 연결되며, 인간의 타락과 원죄를 상징한다. 이런 장면은 석관이라는 장례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죽음 이후의 구원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인간의 타락과 그로 인한 죽음의 기원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장면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로마 황제의 승전 입성식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거다. 비록 나귀를 탔지만, 그 위엄은 황제보다 위대함을 비유하고 있다.
또 다른 장면에서 아기를 안고 있거나 병자를 치유하는 듯한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의 기적을 나타내는 장면일 가능성이 크다.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기적 장면은 단순한 이야기 전달을 넘어 ‘구원의 능력’을 상징하는 중요한 도상이다.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희망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장면들이 선택되었다.
2. 고대 로마 양식과 그리스도교 정신의 만남
전체적으로 이 석관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하나의 ‘신학적 서사’를 조각으로 풀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상단에서는 권위와 가르침, 공동체의 모습을, 하단에서는 인간의 타락과 구원, 기적을 통해 회복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즉, ‘죄 → 죽음 → 구원’이라는 그리스도교 핵심 메시지가 시각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 석관이 '그리스도교 미술의 꽃'이라 불리는 이유다.
한편 조각된 인물들의 신체 비율이나 옷 주름의 표현을 통해 여전히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주의적인 양식이 강하게 남아있는 걸 알 수 있다. 후기 로마 미술의 특징으로, 자연주의적 표현보다는 상징성과 메시지 전달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얼굴 표현은 개별적인 초상보다는 유형화된 형태를 띠며, 개인보다는 이야기와 의미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내용은 완전히 새롭게 구성했다. 이교도의 신화 대신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것, 욥이 고난을 받는 것,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진 것 등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의 구원을 받은 인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유니우스 바수스는 죽음을 앞두고, 이런 성경속 인물들처럼 자신도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은 아닐까.
3. 이 작품의 중요 포인트
① 비문에 숨겨진 역사적 증거 🖋️ 석관 상단의 테두리를 자세히 보시면 라틴어 비문이 새겨져 있다. "IVN BASSVS V.C. QVI VIXIT ANNIS XLII MEN II IN IPSA PRAEFECTVRA VRBI NEOFITVS IIT AD DEVM..." (유니우스 바수스, 42년 2개월을 살았고, 시장 재임 중 예비신자로 하느님께 나아갔다.) 여기서 'NEOFITVS(네오피투스)'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막 개종한 자'라는 뜻인데, 당시 로마 귀족 사회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다는 것이 얼마나 진지하고 급진적인 변화였는지를 보여주는 단어다.
② 아담과 하와의 부끄러움 🍎 하단 왼쪽에서 두 번째 칸을 보라.낙원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가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손 위치다. 죄를 짓고 부끄러움을 느껴 몸을 가리는 이 동작은 서양 미술사에서 '부끄러워하는 비너스(Venus Pudica)' 양식을 차용한 것이다. 이교도의 미적 기준을 그리스도교의 원죄 개념으로 승화시킨 기막힌 반전이다.
③ 세계관의 증거 🌹이러한 석관을 실제로 마주하면, 단순히 ‘아름다운 유물’이라는 인상을 넘어서, 한 시대의 세계관이 얼마나 치열하게 변화하고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 로마 제국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전통적인 다신교 문화와 새롭게 부상한 기독교 신앙이 충돌하고 융합되던 순간이 이 작은 돌 위에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석관은 죽음을 기념하는 물건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서는 메시지를 담은 ‘돌에 새긴 신앙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우리는 이 작품을 단순한 고고학적 유물이 아니라, 인간이 삶과 죽음을 이해하려 했던 깊은 사유의 결과물로 읽어야 할 것이다.
맺으며: 돌 위에 핀 부활의 꽃
유니우스 바수스는 비록 42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이 석관은 1,6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차가운 대리석 위에 새겨진 성경의 장면들은 두려운 죽음 앞에서 그가 붙잡았던 따뜻한 희망의 빛이었을 것이다.
바티칸 박물관의 수많은 화려한 그림들도 좋지만, 나는 종종 이렇게 고요한 석관 앞에 서서 옛 로마인의 숨결과 고민을 느껴보곤 한다. 오늘 이 석관의 조각들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여행 가방 속에 의미 있는 한 장의 사진으로 남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