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4일 금요일

[이탈리아 역사·예술 산책] 성 베드로 대성전에 묻힌 네 명의 여성들, 교황만 잠든 곳이 아니다.

 바티칸의 심장부, 성 베드로 대성전(Basilica di San Pietro)은 흔히 역대 교황들의 영원한 안식처로만 알려져 있다. 실제로 성당 지하 묘소에는 수십 명의 교황이 잠들어 있고, 대성전 곳곳에는 그들의 기념비가 즐비하다. 그런데 이 위대한 공간에 금남(禁男)의 벽을 허물고 당당히 자리 잡은 여성들의 무덤과 기념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를 살아낸 네 명의 여성,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세계에서 가장 신성한 대성전에 그 이름을 새기게 되었을까.


1. 카노사의 마틸다, 교황권을 지킨 여걸

성 베드로 대성전 본당 기둥 사이, 우아한 여인상이 서 있는 기념비가 시선을 끈다. 조각 속 여인은 홀(笏)과 교황의 삼중관을 들고 있다. 세속 권력자임에도 교황을 수호한 상징적 표현이다. 이 주인공이 바로 토스카나 여백작 마틸다(Matilda di Canossa, 1046–1115)다.


중세 유럽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여성 통치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마틸다는 이탈리아 중부와 북부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다. 그녀가 역사에 남긴 가장 극적인 장면은 1077년의 '카노사의 굴욕'이다. 교황 그레고리오 7세와의 서임권 투쟁에서 궁지에 몰린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가 마틸다의 카노사 성에서 사흘간 맨발로 눈 위에 서서 교황의 용서를 빌었던 사건이다. 마틸다는 황제와 교황 사이를 중재한 이 역사적 무대의 주인이었다.

그녀가 사망한 후 수백 년이 흐른 1635년, 교황 우르바노 8세는 그녀의 유해를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이장하고 베르니니에게 화려한 기념비 제작을 의뢰했다. 여성으로서 교황청 역사상 유일하게 성 베드로 대성전 내부에 기념비와 함께 안장된 경우다. 교회를 위해 목숨과 재산을 바친 헌신이 그녀를 이 자리에 세웠다.


2. 키프로스의 여왕 샤를로트, Carola Cypri Regina, 1487년 서거

지하 묘소의 소박한 대리석 석관 위에는 단 세 줄이 새겨져 있다. CAROLA · CYPRI · REGINA · MCDLXXXVII. 화려한 조각도, 천사상도 없다. 그러나 이 간결함 뒤에는 비극적인 왕조의 마지막 장이 담겨 있다.


샤를로트(Charlotte de Lusignan, 1444–1487)는 뤼지냥 왕조의 적통 후계자로 키프로스의 여왕이었다. 그러나 이복동생 자코모 2세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섬을 떠나야 했다. 그 후 수십 년간 그녀는 유럽 각국을 돌며 왕좌 회복을 호소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로마에 정착한 샤를로트는 역대 교황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며 생을 마감했고, 교황 인노첸시오 8세의 배려로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 안장되었다. 잃어버린 왕국의 여왕은 이렇게 가장 거룩한 땅 위에 조용히 잠들었다.


3. 스웨덴 여왕 크리스티나, 왕관을 버리고 로마를 택하다

대성전의 우측 네 번째 기둥 쪽에는 청동 메달리온이 시선을 압도한다. 그 원형 부조 주위로 라틴어가 빼곡하고, 아래 석관 위에는 두 명의 천사가 버려진 왕관을 받쳐 들고 있다. 그 역설적인 도상이 이 인물의 삶을 압축한다. 주인공은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Christina of Sweden, 1626–1689)이다.


스웨덴 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의 외동딸로 태어난 크리스티나는 여섯 살에 왕위를 물려받아 탁월한 지성과 강인한 의지로 나라를 이끌었다. 그러나 1654년, 그녀는 스스로 왕관을 내려놓는 충격적인 선택을 했다. 결혼도, 후계자도 거부하며 "나는 왕국의 틀에 맞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후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로마로 이주하여 예술과 학문을 후원하는 살롱의 중심인물로 새로운 삶을 살았다. 데카르트가 그녀의 초청으로 스톡홀름을 방문했다가 혹한 속에 생을 마감한 일화는 유명하다.

크리스티나는 로마에서 35년을 살다 숨을 거뒀고, 교황 알렉산드로 8세의 결정으로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장되었다. 개신교의 나라 스웨덴 여왕이 가톨릭의 총본산에 잠든다는 것, 그 생애만큼이나 극적인 결말이다.


4. 마리아 클레멘티나 소비에스카, 망명 왕가의 슬픈 왕비

네 명의 여성 중 가장 화려한 기념비를 가진 이는 단연 마리아 클레멘티나 소비에스카(Maria Clementina Sobieska, 1702–1735)다. 본당 상부에 그녀의 초상화 메달리온이 걸려 있고, 하얀 대리석 알레고리 조각상과 천사들이 그 주위를 감싼다. 피에트로 브라치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기념비는 장엄한 슬픔을 발산한다.


클레멘티나는 폴란드 왕 얀 3세 소비에스키의 손녀로, 영국 왕위 계승권을 주장했던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 이른바 '노(老) 참칭자'의 아내였다. 왕위를 되찾지 못한 채 로마에서 망명 생활을 이어가던 부부의 결혼생활은 불행했고, 클레멘티나는 극심한 금욕과 종교적 고행으로 건강을 해쳐 서른세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교황 클레멘스 12세는 그녀를 '왕비'의 예우로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장했다. 왕좌 없는 왕비, 나라 없는 왕조의 슬픔이 이 아름다운 대리석 안에 담겨 있다.


대성전이 품은 역사

성 베드로 대성전이 교황만의 공간이 아님을 이 네 여성이 증명한다. 중세를 호령한 여백작, 잃어버린 왕국의 여왕, 왕관을 스스로 버린 지성인, 그리고 망명지에서 쓰러진 왕비, 저마다 다른 이유로 이곳에 자리를 얻었지만, 그들 모두 격동의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인물들이다. 성 베드로 대성전을 방문할 때, 교황들의 무덤 사이사이에 새겨진 이 여성들의 이름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대리석 위에 새겨진 라틴어 몇 줄이, 수백 년의 시간을 단숨에 건너뛰어 말을 걸어올지도 모르니까.

[이탈리아 역사·예술 산책] 성 베드로 대성전에 묻힌 네 명의 여성들, 교황만 잠든 곳이 아니다.

  바티칸의 심장부, 성 베드로 대성전(Basilica di San Pietro)은 흔히 역대 교황들의 영원한 안식처로만 알려져 있다. 실제로 성당 지하 묘소에는 수십 명의 교황이 잠들어 있고, 대성전 곳곳에는 그들의 기념비가 즐비하다. 그런데 이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