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세레나입니다.
콜로세움의 거대한 위용에 압도된 후 발길을 돌리는 수많은 여행자를 볼 때면, 저는 가끔 속으로 '진짜 로마는 저 땅속에 있는데!' 하며 아쉬움을 삼키곤 합니다. 로마라는 도시는 거대한 '라자냐'와 같습니다. 수천 년의 역사가 지워지는 대신, 그 위에 새로운 층을 덧대며 겹겹이 쌓여온 층위의 도시이기 때문이죠.
오늘 여러분께 소개할 "현지 가이드가 추천하는 로마의 숨겨진 보물" 네 번째 장소는 이런 로마의 지층을 가장 완벽하게 시각화해 보여주는 곳, 바로 산 클레멘테 대성당(Basilica di San Clemente)입니다. 단언컨대 이곳은 단순한 종교 건축물이 아닙니다. 계단을 하나씩 내려갈 때마다 수백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완벽하고도 경이로운 '타임머신'입니다.
<사진 출처: 위키 백과> 산 클레멘테 정면
<사진 출처: 위키 백과> Prospettiva esplosa dei tre livelli della basilica
지상 1층(12세기): 찬란한 중세의 생명나무
현재 로마의 지면과 맞닿아 있는 성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12세기에 지어진 눈부신 중세 성당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황금빛 모자이크로 장식된 제단 위 아치에는 십자가에서 뻗어 나온 넝쿨이 세상을 덮는 '생명나무(Tree of Life)'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대리석을 기하학적으로 엮어 만든 코스마테스코(Cosmatesco) 양식의 바닥과 우아한 성가대석은 중세 종교 예술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사진 출처: 위키 백과> 내부
여기에는 저 유명한 마사초의 스승이자 동료기도 했던 마솔리노 파니칼레의 "성모영보" 벽화(아래 사진, 출처: 위키백과)도 있습니다.
보통의 관광객이라면 이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사진을 찍은 뒤 발길을 돌릴 것입니다. 하지만 가이드와 함께하는 우리의 진짜 여정은 화려한 제단 옆, 작고 어두운 계단을 향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지하 1층(4세기): 어둠을 이겨낸 초기 그리스도교의 흔적
빛이 줄어드는 좁은 계단을 따라 지하로 5미터가량 내려가면, 공기의 온도마저 서늘하게 바뀝니다. 이곳은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직후인 4세기에 지어진 초기 그리스도교 성당의 터입니다. 기둥들은 심하게 닳고 벽은 허물어졌지만, 희미하게 남은 프레스코화들이 당시 신자들의 뜨거운 신앙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위키백과> Morte e riconoscimento di Sant'Alessio
로마에서 신학을 공부한 제게 이 공간은 각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카타콤베의 어둠 속에 숨어 지내던 그리스도인들이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와 자신들의 신앙을 당당히 선포했던 감격스러운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벽면에는 제3대 교황이었던 성 클레멘스의 생애와 기적을 담은 벽화가 남아 있는데, 흥미롭게도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만화의 말풍선처럼 적혀 있어 이탈리아어의 초기 형태를 연구하는 귀중한 언어학적 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11세기 노르만족의 침입으로 성당이 폐허가 되자, 로마인들은 이를 완전히 헐어버리는 대신 흙으로 덮어 그 위에 새로운 12세기 성당을 세웠습니다. 과거를 파괴하지 않고 새로운 역사의 주춧돌로 삼은 셈입니다.
지하 2층(1세기): 고대 귀족 저택과 미트라교 비밀 신전
하지만 이 타임머신의 종착역은 여기가 아닙니다. 한 번 더 비좁고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14미터 깊이의 지하로 내려갑니다. 이 깊은 땅속에서는 어디선가 쉼 없이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와 공간의 신비로움을 더합니다. 이 깊은 지층에는 서기 1세기에 지어진 고대 로마 귀족의 저택과 3세기경에 조성된 '미트라(Mithras)교 신전'이 고스란히 묻혀 있습니다.
미트라교는 우주를 통치하는 불패의 태양신 미트라를 숭배하던 종교로, 험지를 누비던 고대 로마 군인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어두운 동굴 같은 이 비밀스러운 소성당 한가운데에는 황소의 목을 찌르는 미트라 신의 부조 제단이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사진 출처: 위키 백과>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교와 치열하게 패권을 다투었던 이교도 신전 위에 그리스도교 성당이 층층이 세워졌다는 사실입니다. 제국이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선포한 후, 미트라 신전은 강제로 폐쇄되었고, 어두운 신전은 그리스도인들의 손으로 넘어가 새로운 성전의 든든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종교의 치열했던 경쟁과 역사의 묘한 아이러니를 이토록 묵직하고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는 곳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수직으로 읽어 내려가는 로마의 인문학
축축한 1세기의 지층에서 다시 계단을 연달아 올라와 눈부신 12세기 대성당으로 빠져나오면, 마치 2천 년의 시간을 관통하는 긴 터널을 막 빠져나온 듯한 묘한 현기증이 일기도 합니다. 우리는 단 한 장소에서 1세기 고대 로마의 다신교에서 출발해, 4세기 초기 그리스도교의 환희를 거쳐, 12세기 중세 그리스도교의 영광스러운 승리까지 한 편의 서사시와 같은 장소를 보았습니다.
산 클레멘테 대성당은 단순한 건축적 화려함을 뽐내는 곳이 아닙니다. 종교와 인간의 역사가 이 땅에 어떻게 깊숙이 뿌리내리고, 서로 교체되며, 마침내 하나로 융합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입체적이고 완벽한 역사책입니다. 조용한 서재에 앉아 문헌을 번역하며 깨닫는 진리의 기쁨도 크지만, 이렇게 현장의 서늘한 공기를 마시고 거친 돌벽을 직접 만지며 온몸으로 체감하는 역사의 무게는 결코 활자로 모두 담아낼 수 없습니다.
<사진 출처: 위키 백과> San Clemente in un'incisione di Giuseppe Vasi
다음 로마 여행에서는 화려한 지상과 높은 돔에만 시선을 두지 마시고, 발밑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2천 년 전 침묵의 시간 속으로 직접 걸어 내려가는 경험도 꼭 해 보시길 강력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