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5일 토요일

[이탈리아 역사·예술 산책] 파르마의 보물 탐방

 흔히 '파르마(Parma)'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걸로 짭조름하고 고소한 프로슈토와 파르미지아노 레쟈노 치즈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보다 더 깊은 '감추어진 르네상스와 중세 미술의 보물창고'를 소개하려고 한다. 함께 파르마의 심부로 걸어 들어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세 가지 보석-두오모, 세례당, 그리고 성 바오로 수도원-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1. 파르마 두오모, 그리고 안텔라미의 경이로운 손길

가장 먼저 발걸음을 멈출 곳은 파르마의 두오모(대성당) 광장이다. 짙은 회색과 황토색 돌들이 묵직하게 쌓아 올려진 성당의 정면 파사드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장엄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광장에 서서 성당을 올려다보면, 마치 천 년의 세월이 우리를 압도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두오모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성당 내부에 숨어 있다. 바로 베네데토 안텔라미(Benedetto Antelami)가 1178년에 조각한 <십자가에서 내리심(Deposition)> 부조다. 사진 속 인물들이 빼곡하게 채워진 대리석 조각을 자세히 보면,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인물들이 역동적이면서도 슬픔에 잠긴 표정으로 배치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인물은 바로 십자가 왼쪽(예수의 우측)에 있는 '에클레시아(Ecclesia)'다. 에클레시아는 '교회'를 의인화한 여성으로, 천사의 인도를 받으며 성배를 들고 예수의 피를 받고 있다. 반대편에는 고개를 숙이고 철모를 푹 눌러써 눈까지 가린 채 밀려나는 '시나고가(Synagoga, 유대교 회당)'가 대비를 이루고 있다. 에클레시아의 당당함과 시나고가의 고개를 라파엘 천사가 꺾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중세 신학의 핵심 메시지를 돌 위에 이토록 부드럽고 섬세한 옷주름과 감정선으로 새겨 넣은 안텔라미의 천재성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2. 분홍빛 팔각형의 기적, 파르마 세례당

두오모 곁을 지키고 있는 듯, 그 옆에는 거대한 분홍빛 건물이 있다. 베로나산 분홍색 대리석으로 지어진 파르마 세례당(Battistero di Parma)이다. 건물은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고딕 양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걸작 중의 걸작이다.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짧은 탄성을 내뱉게 된다. 우산 살처럼 퍼져나가는 아찔한 돔 천장에는 비잔틴 느낌이 물씬 풍기는 프레스코화가 밤하늘의 별처럼 수놓아져 있다.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문 아래로 시선을 조금 내려보면, 그곳에는 안텔라미와 그의 공방이 제작한 '월별 조각상(I Mesi)'들이 자리 잡고 있다.


1월부터 12월까지, 각 달을 상징하는 별자리와 함께 그 계절에 맞는 농사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조각되어 있다. 포도를 수확하고, 밀을 베고, 불을 쬐는 농부들의 모습은 '노동을 통해 신에게 다가간다'는 중세인들의 소박하지만 숭고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눈에 띄는 것은 '돼지를 잡아 햄을 만드는 것'도 있는데, 이 지역 파르마의 특산품 프로슈토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의 흐름은 노동과 자연과 신의 질서 안에 있다는 것이 중세인의 생각이었다. 한마디로 시간의 흐름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또 여기에는 12 별자리도 있는데, 중세기 별자리는 점성술이 아니라 '신이 만든 우주의 질서'로 간주되었다. 별자리  → 시간 → 인간 → 신으로, "우주는 하나의 질서"라는 점을 강조했다. 우주는 시작 → 성장 → 균형 → 붕괴 → 재생의 구조다. 

그러므로 이곳 세례당에서 표현한 월()은  인간의 삶이고, 별자리는 우주의 질서라는 걸 통해, 인간의 삶은 우주의 질서안에 있다는 것을 예술로 승화했다고 하겠다.


3. 수녀원장의 은밀하고 파격적인 방, 카메라 디 산 파올로


이제 두오모 광장을 지나 조용한 골목으로 조금 걸어 들어가 보겠다. 겉보기엔 평범하고 고요한 수도원 건물이지만, 이 성 바오로 수도원(Monastero di San Paolo) 내부에는 이탈리아 미술사를 뒤흔든 엄청난 반전이 숨어 있다. 바로 조반나 다 피아첸자(Giovanna da Piacenza) 수녀원장의 개인 집무실이었던 '성 바오로의 방(Camera di San Paolo)'이다.

이 방의 천장을 올려다보라. 르네상스의 거장 코레조(Correggio)가 1519년에 완성한 이 천장화는 마치 진짜 덩굴로 엮은 정자 아래에 있는 듯한 완벽한 착시 효과(Trompe-l'œil)를 만들어낸다. 나뭇잎 사이로 난 둥근 창밖으로는 통통하고 사랑스러운 아기 천사(Putti)들이 사냥 도구를 들고 장난을 치고 있다.


이곳은 종교적 공간이지만, 놀랍게도 매우 세속적이고 감각적인 세계를 품고 있다. 특히 원장 조반나 다 피아첸자의 방(Camera della Badessa)은 르네상스의 혁신이 응축된 장소다. 피아첸자의 한 귀족 가문에서 나고 자란 조반나 원장은 폐쇄된 수도원이라는 공간을 활짝 열린 것처럼 방을 꾸몄다. 건축이 공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 공간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코레조(Correggio)가 그린 프레스코가 펼쳐지는데, 이는 마치 덩굴이 얽힌 정원 위로 하늘이 열려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그 사이사이에는 장난기 가득한 푸티(Putti, 아기)들이 전체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공간이 전통적인 종교 이미지 대신, 디아나(Diana)라는 고전 신화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디아나는 순수와 독립을 상징하는 여신으로, 수도원장의 정체성과도 절묘하게 연결된다. 즉, 이 방은 단순한 장식 공간이 아니라 ‘여성 권력과 지성’을 표현한 르네상스적 선언이라 볼 수 있다.


그림의 주제는 "환상의 정원"이다. 식물, 열매, 자연과 같은 소재는 낙원을 상기시킨다. 그 사이에서 놀고 있는 많은 아기도 자연의 한 부분이다. 통제된 자연속 인간의 움직임을 통해 인간화된 자연을 표현한 것이다. 닫힌 공간을 열린 공간처럼 만들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었다.


따라서 여긴 수도원의 방이 아니라, 르네상스의 방인 동시에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공간이다. 천장은 열리고, 자연이 들어오고 종교 대신 인간의 세계가 등장한다. 그래서 중세가 아니라, 르네상스의 사고를 보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

파르마의 이 세 장소는 각각 다른 질문을 던진다. 두오모는 “구원이란 무엇인가?”, 세례당은 “시간 속의 인간은 누구인가?”, 그리고 성 바오로 수도원은 “인간의 감각과 자유는 어디까지 가능한가?”를 묻는다. 이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파르마는 더 이상 작은 도시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사유 공간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이곳은 ‘보는 여행’이 아니라 ‘읽고 사유하는 여행’이 되어야 한다.

다음 이탈리아 여행시엔 잘 알려진 로마, 나폴리,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도 좋지만, 이곳 파르마의 골목길을 걸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펼쳐보길 적극 권한다.

[이탈리아 역사·예술 산책] 파르마의 보물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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