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7일 월요일

[이탈리아 역사·예술 산책]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신앙의 터, 산타 푸덴치아나 대성당

 에스퀼리노 언덕의 골목 안, 로마의 소음이 잦아드는 자리에 산타 푸덴치아나 대성당이 있다. 이곳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유명 성당들의 그늘에 가려 있지만, 그 내부에는 로마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이른 기억이 층층이 쌓여 있다. 사도 베드로가 발을 디뎠다는 전승,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그리스도교 모자이크 중 하나, 그리고 오늘도 이어지는 살아 있는 전례(典禮)이 성당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신앙의 현장이다. 오늘은 그곳을 찾아가 본다. 


사도의 기억이 살아 숨 쉬는 곳,  Basilica di Santa Pudenziana


1. 성당의 역사적 배경

산타 푸덴치아나 대성당(Basilica di Santa Pudenziana)은 로마 에스퀼리노 언덕 비아 우르바나(Via Urbana)에 있다. 작지만 분명 바실리카(Basilica)다. 한 마디로 그 지위는 '대성당급'이라는 말이다. 전승에 따르면 이 터는 로마시대 원로원 의원 푸덴스(Pudens)의 저택이 있던 자리로, 사도 베드로가 이곳에 머물며 초기 로마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이끌었다고 한다. 푸덴스의 두 딸 푸덴치아나(Pudenziana)와 프라세데(Prassede)는 아버지의 집을 사실상 '가정 교회(domus ecclesiae)'로 삼아 신앙 공동체를 섬겼다고 한다.

 교황 시리시우스(Siricius, 재위 384399)와 인노센시우스 1(Innocent I, 재위 401417) 시대에 이르러 성당이 공식 건설되고 봉헌되었으며, 이로써 로마 제국이 종교관용령(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가 신앙의 자유를 얻은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본격적인 전례 장소로 확립되었다. 이후 중세·르네상스·바로크 시대를 거치며 거듭 개축되었으나, 그 심층에는 여전히 4세기 이전의 유적이 잠들어 있다. 현재는 발롬브로사(Vallombrosian) 수도회가 관리하며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2. 파사드, 시간이 층층이 쌓인 외관

전면 파사드는 그 자체가 로마 건축사의 압축판이다. 맨 아래 르네상스 양식의 현관과 기둥, 중간층의 아치 연작과 색 바랜 벽화의 흔적, 그 위로 중세 로마네스크 종탑이 솟아 있고, 꼭대기의 박공(pediment)이 고전적 삼각형의 실루엣을 완성한다. 외벽의 황토색 벽돌은 수백 년에 걸친 풍화와 복원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박공 아래 희미하게 남은 모자이크 조각은 과거 이 파사드가 얼마나 화려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앞마당 바닥의 원형 코스마테스크(Cosmatesque) 문양은 12세기 로마 장인들의 손길이다. 흰색과 회색 대리석이 기하학적 패턴을 이루는 이 장식은 성당 입구에서부터 방문자를 신성한 공간으로 이끄는 의례적 역할을 했다. 좌측 공사 현장의 "CAPUT MUNDI(세계의 수도)" 현수막은 로마가 지금도 자신의 유산을 꾸준히 가꾸고 있음을 보여 준다.

 

3. 내부, 바닥에 새겨진 고백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바닥의 대리석 비문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HAEC SANCTA ANTIQUISSIMA ECCLESIA"로 시작하는 이 라틴어 비문은 이 성당이 교황 아나스타시오에 의해 봉헌된 '가장 오래된 거룩한 교회'임을 선언하고, 푸덴치아나와 프라세데 두 동정 순교자 자매가 이 터에 3,000명의 순교자 유해를 안장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비문은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이 공간이 가진 순교의 기억을 살아 있게 하는 선언문이다.


 내부 본당은
 통로가 세 개로 나뉘며, 볼트형 천장 아래 양쪽 아치와 필라스터가 리드미컬한 깊이를 만들어 낸다. 성상화들이 배치된 측면 벽과 따뜻한 조명 아래 옹기종기 모인 신자들의 모습은 이 공간이 박물관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전례 공간임을 일깨운다.

 

4. 중앙제단 전경, 건축이 만든 성스러운 프레임

아치 너머로 바라보는 중앙제단은 건축적 프레이밍의 교과서적 사례다. 개선문(triumphal arch) 꼭대기에서는 두 천사 조각이 교황 문장을 받쳐 들고, 그 아래 반원형의 앱스 공간 안에 4세기의 모자이크가 있다. 16세기에 추가된 바로크 양식의 제단과 대리석 패널들이 고대 모자이크를 하나의 그림처럼 감싸고 있어, 보는 이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가운데 그리스도의 형상에 집중한다. 이 시각적 구성은 우연이 아닌, 전례 신학이 건축 언어로 구현된 결과다. 


5. 앱스 모자이크,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모자이크 중 하나

이 성당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앱스(apse)를 가득 채운 이 모자이크 때문이다. 390~417년경,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600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현존하는 로마 그리스도교 모자이크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 중 하나로 손꼽힌다. 


중앙에 황금 왕좌에 앉은 그리스도가 로마 황제 혹은 원로원 의원의 모습으로 위엄 있게 자리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교가 박해받던 소수 종교에서 제국의 공식 종교로 지위를 전환한 직후, 그리스도의 신적 권위를 당대 최고 권력의 시각 언어로 선포한 도상이다. 그를 둘러싼 열두 사도가 반원을 이루고, 좌우에는 두 여인-푸덴치아나와 프라세데-이 베드로와 바오로의 머리 위에 월계관을 씌우고 있다. 이 두 여인의 존재는 여성 신앙인이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담당했던 역할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배경에는 천상 예루살렘으로 추정되는 도시의 건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하늘 한가운데에는 보석으로 장식된 금 십자가(Croce Gemmata)가 솟아 있다. 보석 장식의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한다. 그 옆으로 마태오(천사), 마르코(사자), 루카(황소), 요한(독수리)를 상징하는 복음사가들이 알록달록한 하늘, 곧 노을이 지는 하늘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것은 묵시록에서 언급하는 그리스도의 재림시간을 의미한다. 이 도상은 이후 서방 그리스도교 예술 전통 전체에 깊은 영향을 미친 정전(正典)적 모델이 되었다.


5. 카에타니 경당의 돔, 르네상스의 천상 찬가

중앙제단 안쪽에 있는 카에타니(Caetani) 가문의 경당은 16세기 말에 조성되었고, 그 돔에는 화려한 르네상스 시대의 프레스코화가 가득하다. 정점의 원 안에 그리스도의 얼굴이 빛 속에 자리하고, 그 주변으로 각기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천사들-바이올린, 류트, 오르간을 든 모습-이 황금빛 구름 속에서 선회한다. 그 아래 풍성한 아기 천사(putti)들과 세 성인의 위엄 있는 입상이 시선을 아래로 이끈다. 전체 구성은 바로크 직전 시대의 이상, 즉 예술이 천상의 영광을 지상에 구현해야 한다는 신념을 완벽하게 표현한다. 


이 돔의 프레스코화는 4세기 앱스 모자이크와 함께 이 대성당이 보유한 두 가지 예술적 정점을 이룬다. 고대의 엄숙한 신학적 선언과 르네상스의 화려한 찬미가 한 공간 안에 공존하는 것, 이것이 산타 푸덴치아나 대성당의 독보적인 매력이다.

 

맺음말- 살아 있는 역사의 공간

산타 푸덴치아나 대성당은 로마의 수많은 성당들 사이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4세기의 모자이크, 중세의 비문, 르네상스의 돔 프레스코, 그리고 오늘도 이어지는 미사이 모든 것이 한 공간 안에 공존한다는 사실이 이 대성당을 단순한 유적 이상의 것으로 만든다. 이곳은 그리스도교가 박해의 시대를 지나 로마 제국의 언어와 미학을 흡수하며 보편 종교로 성장한 역사의 현장이자, 사도의 발자취가 서린 땅 위에 세대를 이어 신앙을 고백해 온 공동체의 터전이다.

 에스퀼리노 언덕의 좁은 골목을 걸어 이 대성당에 이르면, 관광지의 화려한 성당들의 웅장함 대신 소박하고 깊은 고요함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고요 속에서, 로마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이른 목소리가 여전히 메아리치는 듯하다.

 

"HAEC SANCTA ANTIQUISSIMA ECCLESIA" (이곳 가장 오래된 거룩한 교회)

 그 이름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탈리아 역사·예술 산책]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신앙의 터, 산타 푸덴치아나 대성당

  에스퀼리노 언덕의 골목 안 , 로마의 소음이 잦아드는 자리에 산타 푸덴치아나 대성당이 있다 . 이곳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유명 성당들의 그늘에 가려 있지만 , 그 내부에는 로마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이른 기억이 층층이 쌓여 있다 . 사도 베드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