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 마우로의 세계지도 (Fra' Mauro Mappamondo)
베네치아의 마르챠나 도서관 박물관에 가면 진귀한 자료들이 많은데, 그 중에는 신대륙 발견 이전에 나온 세계지도가 하나 있다. 그것도 전문 항해사나 국제무역을 하던 상인에 의해 작성된 것이 아니라, 수도생활을 하던 한 수사가 베네치아를 찾던 수많은 외지인과 동향인들의 입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여 제작한 것이어서 당시 베네치아가 얼마나 번성했는지, 그 시대의 세계관, 사고방식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세계지도는 중세 후기 지도 제작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념비적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지도를 설명하기에 앞서, 저자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기로 한다. 이탈리아어로 프라 마우로(Fra Mauro, 1400년경~1464년)는 '마우로 수사'라는 뜻이다. 아래 사진은 위키백과 참조.
🌊 프라 마우로와 베네치아: 15세기의 빅데이터 센터
프라 마우로는 베네치아 석호에 있는 여러 섬들 중,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같은 유명인들이 잠들어 있는 공동묘지 섬, '산 미켈레(San Michele)' 수도원의 카말돌리회 수사였다. 그는 직접 배를 타고 험난한 바다를 누빈 탐험가였을까? 전혀 아니다. 그는 평생 수도원 밖을 거의 벗어나지 않은 '방구석 여행자'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수도원 방 안에 앉아 당대 최고의 지도를 그릴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베네치아'라는 도시의 공간적 특수성에 있다. 1450년대 베네치아는 동양과 서양을 잇는 무역의 중심지이자 해상 제국이었다.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를 다녀온 상인, 선원, 외교관들이 모두 베네치아 항구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프라 마우로는 베네치아라는 거대한 '15세기 빅데이터 센터'의 최고 분석가였다. 그는 항구를 거쳐 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끈질기게 인터뷰했고, 아랍의 지리서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등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여 이 지도를 완성했다.
📜 지도의 역사적 배경
이 지도는 당시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려 혈안이 되어 있던, 포르투갈의 국왕 알폰소 5세와 베네치아 공화국의 의뢰로 제작되었다. 당시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인도로 가는 신항로를 찾고 있었고, 가장 정확한 최신 정보가 절실했다. 바로 이 세계지도가 탄생한 경위다.
지도가 갖는 역사적인 가치는 중세의 맹목적인 종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과학적이고 경험적인 세계관으로 넘어가는 결정적 전환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전의 중세 지도들은 무조건 예루살렘을 세상의 중심에 두고, 에덴동산을 지도 한가운데 크게 그렸다. 하지만 프라 마우로는 철저히 상인들의 증언과 실제 지리를 바탕으로 지도를 그렸고, 신학적 상징인 '지상 낙원'은 지도 밖 액자 모서리로 밀려났다.
물론 신대륙이 발견되기 훨씬 전에 그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이 '세계'라는 데 중점을 두었다. 육지는 바다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고, 남쪽이 위를 향하고, 원둘레를 따라 8개의 방위표(나침반 장미)가 배치되어 있다.
마우로 수사는 지도, 역사, 문학, 구전 기록 등 방대한 출처를 활용하고, 수많은 언어를 놀랍게 통합해 냈다는 점에서 이전의 지도 제작 전통과 뚜렷이 구별된다. 지도상의 공간은 수백 개의 이미지와 베네치아 방언으로 쓰인 약 3,000개의 비문으로 채워져 있다. 여기에는 정보, 관찰 내용, 작가의 주석 등이 담겨 있어 고전, 후기 라틴어 및 중세 작가들의 저술에 대한 그의 깊은 지식을 보여준다.
액자의 네 모서리에는 레오나르도 벨리니(Leonardo Bellini)가 세밀화로 그린 '지상 낙원(Paradiso terrestre)'과 함께 우주론적인 묘사와 주해들이 자리 잡고 있다.
베네치아, 약 1450-1460년. 목판에 양피지, 필사본. 평면 구체도 196 x 193 cm, 액자 포함 223 x 223 cm.
📜 지도에 담긴 재미 있는 포인트
1. "지도의 위아래가 뒤집혀 있다? 남쪽이 위를 향하는 지도!"
현대인들에게 지도는 당연히 북쪽이 위지만, 이 지도는 남쪽이 위를 향하도록(orientato a Sud) 그려져 있다. 왜 중세 사람들은 지도를 이렇게 거꾸로 그렸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권력이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흥미로운 열쇠가 된다.
🧭 왜 지도의 위쪽이 북쪽이 아니었을까?
현대인들은 '위=북쪽'이라는 공식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지도에서 어느 방향을 위로 두느냐는 철저히 '그 지도를 만든 사람들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했는가'에 따라 달랐다.
# 초기 중세 그리스도교 지도: "가장 중요한 에덴동산(동쪽)이 위로 가야지!" 프라 마우로 이전의 전형적인 중세 유럽 지도(일명 TO 지도)들은 대부분 동쪽(East)이 위를 향했다. 왜 그랬을까? 해가 뜨는 동쪽에 하느님이 창조한 '지상 낙원(에덴동산)'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깨알 상식: 우리가 길이나 방향을 잡는다는 뜻으로 쓰는 단어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이 바로 여기서 나왔다. 동쪽을 뜻하는 '오리엔트(Orient)'를 지도의 위쪽에 맞추는 행위에서 유래한 말이다!
# 프라 마우로의 지도: "최첨단 아랍 과학을 따라 남쪽(South)을 위로!" 그렇다면 프라 마우로는 왜 동쪽도 북쪽도 아닌 남쪽을 위로 그렸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아랍 지도 제작술의 영향: 당시 유럽보다 지리학과 천문학이 훨씬 발달했던 곳이 이슬람 세계였다. 12세기, 위대한 아랍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Al-Idrisi)를 비롯한 아랍 학자들은 주로 남쪽을 지도의 위에 두었다. 프라 마우로는 낡은 종교적 관습(동쪽이 위)을 버리고, 당대 최고 수준이었던 아랍의 과학적인 지도 제작 데이터를 적극 수용했기 때문에 남쪽을 위로 둔 것이다.
미지의 대륙, 아프리카: 당시 유럽의 최대 관심사는 '아프리카(남쪽)를 우회해서 인도로 가는 바닷길이 있는가?'였다. 사람들의 시선과 호기심이 온통 남쪽을 향해 있었던 시대상이 반영된 것이기도 할 것이다.
# 그럼 언제부터 북쪽(North)이 위로 고정되었을까? 우리가 아는 '북쪽이 위인 지도'가 표준이 된 것은 크게 두 가지 발명품 덕분이다.
나침반의 대중화: 15세기 이후 대항해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항해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도구는 항상 북쪽을 가리키는 '자기 나침반'이었다. 항해사들이 나침반을 보며 지도를 읽기 편하도록 북쪽을 위로 두기 시작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귀환: 고대 그리스의 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쓴 『지리학』이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으로 다시 번역되어 들어왔는데, 이 책에서 북쪽을 위로 두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이것이 인쇄술과 결합하면서 지금의 '북쪽=위' 공식이 유럽에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결국 프라 마우로의 지도는 '신앙 중심의 세계(동쪽이 위)'에서 '과학과 탐험의 세계(북쪽이 위)'로 넘어가는 아주 역동적인 과도기에, 최첨단 아랍 과학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걸작인 셈이다.
2. "3천 개의 베네치아 사투리가 적힌 중세의 빅데이터"
단순히 지형만 그린 것이 아니라, 베네치아로 몰려드는 전 세계의 상인과 선원들의 입을 통해 생생한 목격담을 모아 3,000개가 넘는 정보를 빼곡히 적어 넣었다. 당시 베네치아는 '15세기의 실리콘밸리'였던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몰랐던 시대의 사람들이 세상을 얼마나 치밀하고 다채롭게 이해하고 있었는지, 깨알 같은 베네치아 사투리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기록하였기에, '중세판 구글 어스' 나 다름없었다고 하겠다.
놀라운 것은 아프리카 대륙의 맨 아래쪽에 바스코 다 가마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기 수십 년 전이지만, 이 지도에는 이미 '아프리카를 삥 돌아서 바다로 갈 수 있다'고 그려져 있는 것이다. 당시 대항해 시대를 준비하던 포르투갈 왕이 이 지도를 거액을 주고 주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대륙이 발견되기 약 30~40년 전에 나온 지도라는 걸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아래사진: 베네치아, 마르챠나 도서관 내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