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르코 대성당 앞 바닷가에 서서 보면, 건너편에 큰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della Salute)이 있다. 그 안에는 틴토레토, 티치아노 등의 작품도 있지만 베네치아 사람들에게 오랜 세월 공경받던 마리아 성화가 하나 있다. 이 성화에 얽힌 이야기를 해 보겠다.
원래 성화는 17세기 후반, 베네치아와 그리스 섬들과 있었던 많은 전쟁의 아픔을 안고 크레타에서 가져온 것으로, 후에 베네치아를 휩쓸었던 최악의 흑사병이 끝난 것을 감사하며 지은 '살루테 대성당'의 의미와 맞물려 베네치아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성화로 이어졌다.
📜 마돈나 델라 살루테 (Madonna della Salute : 건강/구원의 성모)
1670년 11월, 이 대성당에 안치된 '마돈나 델라 살루테' 성화(이콘)는 원래 칸디아(Candia, 현재의 크레타섬) 대성당에서 온 것으로, 그곳에서는 '산 티토의 성모' 또는 '메소판디티사(Mesopanditissa: 성탄절과 예수 성전 봉헌 축일 사이에 축일이 치러진 데서 유래)'로 알려져 있었다.
칸디아 전쟁(크레타 전쟁) 말기 튀르크(오스만 제국)와 맺은 평화 조약 이후, 모로시니(Francesco Morosini) 장군은 이 성화를 베네치아로 가져왔다. 이는 총사령관이었던 그와 칸디아 섬에 살던 베네치아 주민들이 이 이콘에 대해 가졌던 아주 깊은 신앙심 때문이었다.
전승에 따르면, 이 성화는 복음사가 성 루카가 그렸다는 둥, 루카가 의사였기에 인물묘사를 디테일하게 하여 루카 전통으로 알려졌다는 둥의 이야기가 많은 것으로,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기적의 성화라 일컫는 '아케로피타(Acheropita, "기적적인 기원을 가진 진짜 성화")'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12세기에 성모 마리아 성화를 전문으로 그리던 화가인 '마도네로(madonero)'가 그린 작품이다.
1922년, 이 성당이 교황청으로부터 '바실리카 미노레(Basilica minore, 소성당)'의 지위를 부여받으면서 성화에 왕관이 씌워졌다.
그늘진 얼굴과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 깊은 여운을 준다. 1959년 라차리니(Lazzarini) 교수에 의해 훌륭하게 복원되었다.
📝 성화에 얽힌 몇 가지 이야기
성화는 베네치아 역사와 맞물려 회자되던 작품이다.
1. 오스만 제국을 피해 베네치아로 온 '피란민 성모님'
성화는 처음부터 베네치아에 있던 것이 아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지중해의 핵심 거점이었던 크레타섬(칸디아)을 두고 오스만 제국과 20년이 넘는 처절한 전쟁을 벌였고, 결국 패배하여 섬을 내어주게 되었다. 철수하던 모로시니 장군이 베네치아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이 이콘을 소중히 챙겨서 베네치아로 돌아온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화는 화려한 전리품이 아니라,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피란민'과 같은 사연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2. 전설과 팩트 체크: "진짜 성 루카가 그렸을까?"
중세 시대에는 유명한 성화들을 '복음서 저자인 성 루카가 직접 그렸다'고 믿는 경우가 많았다. 이 안내판 역시 흥미롭게도 전설(성 루카가 그림)과 팩트(12세기 이름 모를 전문 화가가 그림)를 모두 친절하게 적어두고 있다. 사람들에게 "옛날 사람들은 이 그림이 기적의 그림이라고 믿었어요!"라고 소개하며, 당시의 순수한 신앙심과 현대의 과학적 연구 결과를 비교하기도 한다.
3. 비잔틴 예술의 신비로움: "그늘진 얼굴과 꿰뚫어 보는 눈빛"
안내판의 마지막 문장처럼 그림의 매력은 르네상스 시대의 화사한 성모 마리아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있다. 짙은 금빛 배경에 약간 어둡고(adombrato) 엄숙한 표정, 관객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깊은 눈빛(occhi penetranti)을 지니고 있다. 동방 정교회의 영향을 받은 비잔틴 양식 특유의 신비롭고 영적인 느낌을 시각적으로 잘 전달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