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0일 수요일

[로마여행의 숨은 보석 3] 평면에 세운 무한의 우주, 산티냐치오 성당과 예수회의 비밀

 안녕하세요, 로마에서 인사드리는 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세레나입니다.

로마의 중심부, 수많은 인파가 판테온과 트레비 분수를 향해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길목에는 관광객들이 의외로 쉽게 지나쳐 버리는 숨겨진 명소가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로마에 널린 수백 개의 평범한 성당 중 하나 같지만, 일단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누구라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천장만 멍하니 올려다보게 만드는 마법 같은 공간. 바로 오늘 여러분께 소개할 산티냐치오 성당(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성당, Chiesa di Sant'Ignazio di Loyola)입니다.


<사진 출처: 위키 백과>


예산 부족이 낳은 기적, 평면 위에 그려진 '가짜 돔(Cupola)'

산티냐치오 성당 안으로 걸어 들어가 중앙 제단 쪽으로 가다 보면, 바닥에 둥근 황동색 대리석 표식이 하나 보입니다. 바로 이 표식 위에 서서 천장을 올려다보는 순간, 사람들은 완벽한 입체감을 자랑하는 거대하고 화려한 돔(Cupola)을 마주하게 됩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굴절, 정교하게 세워진 기둥들까지 완벽한 입체 구조물처럼 보입니다.

여기에는 놀라운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조금만 옆으로 걸음을 옮겨 다시 올려다보면, 입체적으로 보였던 기둥들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이 거대한 돔이 실제로는 완전히 평평한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17세기 중반, 이 성당을 건축할 당시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거대한 돔을 올리기에는 후원금이 턱없이 부족했던 데다, 인접한 도미니코회 수도사들이 "저 거대한 돔이 올라가면 우리 도서관의 귀한 햇빛을 가리게 된다"며 거세게 반발했던 것입니다. 돔 없는 성당은 상상할 수 없었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예수회 수사이자 천재적인 원근법의 대가, 안드레아 포초(Andrea Pozzo)였습니다. 그는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의 눈을 완벽하게 속이는 '콰드라투라(Quadratura, 착시를 이용한 원근법 예술)' 기법으로, 평면의 어둠 속에 찬란한 빛이 쏟아지는 영원의 돔을 세워 올렸습니다.


<사진 출처: 위키 백과>


하늘을 여는 시각적 선언문: 성 이냐시오의 영광

시선을 조금 더 뒤로 옮겨 중앙 신자석의 거대한 천장화를 보면 그 경이로움은 배가 됩니다. <성 이냐시오의 영광>이라는 제목의 거대한 프레스코화 역시 안드레아 포초의 작품입니다. 천장이 마치 하늘을 향해 무한히 뚫려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그 위로 성 이냐시오 로욜라(예수회 창설자)가 그리스도를 향해 승천하는 경이로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천장화의 네 모서리에 당시 유럽인들이 인식하던 세계의 네 대륙 -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 이 의인화되어 그려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단순히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장식이 아니었습니다.


<사진 출처: 위키 백과>


시각을 통한 설득, 예수회의 '적응주의' 철학

한때 마태오 리치 연구자로, 그분의 발자취를 추적하며 『예수회의 적응주의 선교』를 위한 자료를 수집하고, [리치 원전]을 번역하면서, 저는 종종 이 산티냐치오 성당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앉아 천장을 올려다보며 깊은 사색에 잠기곤 했습니다. 문헌 속에 활자로 남겨진 예수회의 치열했던 역사가 가장 화려한 시각적 언어로 폭발하는 현장이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입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의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 탄생한 예수회는 기존의 가톨릭 수도회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수동적으로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최전선으로 나가는 '영적 군사'들이었습니다. 언어와 관습이 전혀 다른 미지의 땅 중국에 들어가, 현지문화를 짓밟는 타불라 라싸(Tabula Rassa) 방식이 아니라,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유교적 세계관 위에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녹여내려 했던 마태오 리치의 헌신적인 '적응주의(Accommodation)' 방식이 예수회를 특징이 되었습니다.

산티냐치오 성당의 이 압도적인 착시 예술 역시, 대중의 마음을 열기 위한 예수회만의 또 다른 '적응주의'였습니다. 글을 모르는 대중에게 딱딱한 교리로 설교하는 대신, 이성적이고 차가운 기하학과 원근법을 활용해 감성을 뒤흔드는 극적인 기적을 눈앞에서 직접 보여준 것입니다. 평면의 한계를 넘어 무한의 우주를 그려낸 포초의 붓끝은, 결국 전 세계의 모든 대륙을 향해 지식과 영성을 전파하려 했던 예수회의 끝없는 포부와 철학적 유연성을 증명하는 위대한 선언문이었습니다.


아는 만큼 깊어지는 로마의 시간

많은 관광객이 이 성당에 들어와 신기한 듯, '가짜 돔'의 착시 현상에만 감탄하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는 이내 발길을 돌립니다. 하지만 안드레아 포초의 붓질 뒤에 숨겨진 시대의 결핍, 그리고 이를 예술적 승화로 극복해 낸 예수회 수도사들의 치열한 역사를 알고 나면, 이 평면의 캔버스는 단순한 눈속임을 넘어 가슴을 때리는 묵직한 인문학적 울림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로마는 그저 눈으로만 담기에는 너무나 깊고 웅장한 책과 같은 도시입니다. 다음 로마 여행에서는 화려한 분수와 광장을 지나, 산티냐치오 성당의 둥근 황동 표식 위에 조용히 서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가짜 돔이 만들어낸 무한의 공간 너머로, 시대를 관통하며 치열하게 세상을 이해하고자 했던 과거 지식인들의 뜨거운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그 순간, 여러분의 로마 여행이 한 편의 깊이 있는 예술 에세이로 변모할 것입니다.


<사진 출처: 위키 백과> 성 이냐시오에게 헌정한다는 명패


[로마 여행의 숨은 보석 4] 2천 년의 시간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타임머신: 산 클레멘테 성당

 안녕하세요, 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세레나입니다. 콜로세움의 거대한 위용에 압도된 후 발길을 돌리는 수많은 여행자를 볼 때면, 저는 가끔 속으로 '진짜 로마는 저 땅속에 있는데!' 하며 아쉬움을 삼키곤 합니다. 로마라는 도시는 거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