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로마 현지에서 인사드리는 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세레나입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로망의 도시, 바로 피렌체(Firenze)죠. 그중에서도 붉은 지붕이 돋보이는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두오모)'은 르네상스의 상징과도 같은 곳입니다.
하지만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돔(쿠폴라)이 세계 최초의 '함바집(현장 식당)' 덕분에 완성되었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오늘은 피렌체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하던 시절 제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던, 천재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와 피렌체 전통 요리 '페포소(Peposo)'에 얽힌 흥미진진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르네상스의 서막을 열다
15세기, 1400년대의 피렌체는 말 그대로 '문화 혁명'의 시기였습니다. 이 혁명의 거대한 불씨를 당긴 것은 두 개의 치열한 공모전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1401년에 열린 피렌체 세례당의 북문 공모전이었고, 두 번째는 1418년 두오모 성당의 지붕(돔)을 얹는 공모전이었죠. 운명의 장난처럼 첫 번째 북문 공모전에서는 기베르티가 우승을 차지했지만, 두오모 돔 공모전에서는 북문에서 쓰라린 고배를 마셨던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가 최종 승리자가 됩니다.
2년의 치밀한 유예 및 준비 기간을 거쳐 1420년 8월 7일, 드디어 역사적인 돔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로마의 판테온을 모델로 삼았다고는 하지만, 판테온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거대한 돔 형태의 지붕을 지지대 없이 공중에 띄워 올려야 하는,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전대미문의 공법이 필요했으니까요. 이 혁신적인 과정에서 '아우토 포르탄테(auto-portante, 스스로 지탱하는 구조)'나 '스피나 디 페세(spina di pesce, 생선 뼈 공법)' 같은 건축 역사에 길이 남을 새로운 전문 용어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습니다.
300개의 좁은 계단, 그리고 인부들의 귀여운(?) 꼼수
여덟 개의 거대한 조각을 안팎에서 두 겹으로 동시에 쌓아 올리는 작업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단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지상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공중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도 허용되지 않았고, 붉은 벽돌 한 장조차 허투루 구워져서는 안 되었습니다. 완벽주의자였던 브루넬레스키는 현장에서 직접 인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체크하고 감독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난관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인부들은 무겁고 단단한 벽돌을 짊어지고 무려 300개가 넘는(최종적으로는 464개에 달하는) 좁고 가파른 계단을 매일 오르내려야 했습니다. 이 엄청난 노동 강도에 지친 인부들은 점심시간만 되면 땅으로 내려가 온갖 핑계를 대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 지상으로 내려간 인부들은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내가 몹시 아파서 간호를 해야 한다"며 복귀를 미루기 일쑤였습니다.
더욱 골치 아픈 일은,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온 인부들이 토스카나의 포도주를 곁들여 마시고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취기가 오른 인부들이 아찔한 공중에서 마음먹은 대로 작업을 진행할 리 만무했고, 공사 일정은 자꾸만 차질을 빚게 되었습니다.
천재의 기발한 해결책, 공중 화덕과 페포소의 탄생
공사 기일을 맞추고 현장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고심하던 브루넬레스키의 머릿속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번뜩였습니다. "인부들이 한 번 위로 올라가면, 아예 내려오지 않게 할 방법은 없을까?"
그는 돔 위, 즉 공사 현장 공중에 벽돌을 굽는 화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화덕의 남는 열기를 이용해 벽돌도 굽고 음식도 조리한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고공 '함바집'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화덕에서 조리하기 가장 좋으면서도 인부들의 체력을 보충해 줄 음식은 무엇이었을까요?
여기서 브루넬레스키는 임프루네타(Impruneta) 지방에서 즐겨 해 먹던 향토 음식인 '페포소(Peposo)'를 떠올렸습니다. 피렌체와 시에나 사이에 위치한 임프루네타는 예로부터 토스카나 구릉의 찰진 흙이 빚어낸 훌륭한 토기(테라코타) 그릇이 많았고, 근처 키안티(Chianti) 지역의 풍부한 포도주가 넘쳐나는 마을이었습니다. 두오모의 붉은 벽돌 역시 이 지역의 흙으로 구워낸 것이 많았죠.
르네상스를 완성시킨 든든한 고기 스튜
페포소의 조리법은 당시 현장 상황에 완벽하게 들어맞았습니다. 커다란 토기 냄비에 저렴하고 질긴 소고기 부위를 듬성듬성 대충 잘라 넣고, 값싼 포도주를 듬뿍 붓습니다. 그리고 고기의 누린내를 잡기 위해 통후추(Pepe)와 마늘을 넉넉히 넣은 뒤, 벽돌 화덕의 은은한 열기로 장시간 뭉근하게 익혀냅니다. 후추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페페(Pepe)'에서 유래한 '페포소'라는 이름 자체가 '후추스럽다'는 뜻일 정도로 그 풍미가 핵심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화덕에서 졸여진 소고기는 입안에서 부드럽게 흩어졌고, 한국의 맛있는 소갈비찜과 매우 흡사하면서도 이국적인 깊은 맛을 냈습니다. 이 든든하고 따뜻한 고기 요리를 공중에서 바로 배불리 먹게 된 인부들은 더 이상 땅으로 내려갈 핑계를 찾지 않았고, 점심시간의 와인 음주 사건도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건축과 미식의 위대한 유산
브루넬레스키의 이 기발한 고공 함바집 운영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습니다. 인부들의 동선 낭비와 음주로 인한 작업 지연이 사라지자 돔 공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아찔한 높이에서 단 한 건의 치명적인 안전사고도 없이, 착공 16년 만에 이 위대한 건축물이 무사히 완성되었습니다.
당시 돔 꼭대기에서 현장 인부들의 굶주린 배와 고단함을 달래주었던 투박한 페포소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월이 흘러 르네상스의 역사가 녹아든 피렌체의 자랑스러운 전통 요리가 되어 전 세계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다음에 피렌체에 방문하셔서 두오모의 웅장한 돔을 마주하신다면, 혹은 피렌체 골목의 어느 식당에서 진한 붉은빛의 페포소를 맛보신다면, 15세기 어느 날 공중에서 땀 흘리며 고기를 건져 먹던 인부들의 모습과 브루넬레스키의 안도하는 미소를 꼭 한번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더 맛있어지는 것이 바로 이탈리아 여행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