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박물관의 끝없이 이어지는 조각상들의 바다 속에서 방문자들은 때로 길을 잃거나 피로감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수천 년의 침묵을 깨고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유물들의 진짜 이야기를 알게 되면, 그 돌덩이들은 이내 생명력을 얻고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제가 직접 찍은 현장 사진과 고문서 자료를 바탕으로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위대한 정치가, 페리클레스(Pericles)의 흉상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 오늘의 포인트 2가지
1. 그리스 원작과 로마 복제품의 절묘한 만남: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청동상이 2세기 로마의 대리석으로 부활하여 전해진 사연!
2. 시인의 찬사를 받은 조각상: 발굴 당시 로마 전체를 들썩이게 한 조각상과, 그 곁을 지키고 있는 빈첸초 몬티의 낡은 헌정시 액자
🏛️ 코린토스식 투구를 쓴 아테네의 영웅
제가 꼼꼼하게 찍어온 사진을 함께 들여다볼까요?
사각형의 기둥 위, 가슴 윗부분과 머리만 조각된 이러한 형태를 미술사에서는 '헤르마(Herma)'라고 부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교차로나 경계에 길을 안내하는 수호신 헤르메스의 두상을 얹어놓았던 데서 유래했습니다.
기둥 정면에는 그리스어로 선명하게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ΠΕΡΙΚΛΗΣ ΞΑΝΘΙΠΠΟΥ ΑΘΗΝΑΙΟΣ (크산티포스의 아들, 아테네인 페리클레스)" 글자 하나하나가 마치 어제 새긴 것처럼 또렷하여, 이 인물이 누구인지 명확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살짝 위로 올려 쓴 코린토스식 투구 사이로 삐져나온 곱슬거리는 머리카락과 턱수염, 그리고 감정을 절제한 차분하고 이성적인 눈빛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페리클레스는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황금기'를 이끌며 파르테논 신전 건축을 주도했던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박물관 안내문에는 이탈리아어와 영어로, 이 작품의 출처를 정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 흉상은 기원전 5세기 후반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세워졌던 조각가 크레실라스(Kresilas)의 유명한 청동 원작을 모델로, 로마 제국의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서기 160~170년경)에 만들어진 대리석 복제본입니다. 원본은 청동으로 되었고 오랜 세월을 거치며 녹여서 써 버린 걸로 추정됩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리스 문화를 흠모했던 로마인들의 정교한 모사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그의 고결한 모습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교황의 헌신과 발굴의 환희
조각상의 하단을 한 번 살펴볼까요? 제일 아래쪽에는 라틴어로 "MVN. PII. SEXTI. P. M"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최고 교황 피우스 6세의 하사품(Munificentia Pii Sexti Pontificis Maximi)"이라는 뜻입니다. 피우스 6세(재위 1775~1799)는 18세기 후반 바티칸 박물관, 특히 현재 이 작품이 전시된 비오-클레멘스 박물관(Museo Pio-Clementino)을 크게 확장하고 기틀을 다진 교황입니다. 이곳이 저 유명한 <토르소>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 작품도 <토르소> 바로 앞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수장인 교황이 이교도였던 고대 그리스 정치인의 흉상 발굴을 이렇게 기뻐하고, 거기에 자신의 이름까지 새겨 넣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는 18세기, 바티칸이 단순히 종교적 중심지를 넘어, 서양 문명의 뿌리인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적 가치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인류 문화의 진정한 수호자'를 자처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대목입니다.
박물관의 안내문은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 헤르마가 발굴되었을 때 당대인들이 보인 엄청난 열광은, 빈첸초 몬티(Vincenzo Monti)로 하여금 조각상의 발견과 교황 피우스 6세의 관대함을 동시에 찬양하는 '페리클레스의 의인화(Prosopopea di Pericle)'라는 작품을 쓰게 만들었다."
르네상스 이후 고대 문화에 대한 동경이 극에 달했던 18세기 로마에서, 아테네 최고 지도자의 얼굴이 온전한 형태로 흙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로마 지식인들이 느꼈을 흥분과 전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 조각상 곁을 지키는 낡은 액자 속 서사시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알고 나면, 조각상 바로 옆에 다소곳이 걸려 있는 낡은 텍스트 액자가 결코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 문서가 바로 이탈리아의 유명한 신고전주의 시인 빈첸초 몬티가 바친 헌정시입니다. 위 부분에 "PROSOPOPEA DI PERICLE ALLA SANTITA DI N. S. PIO SESTO (피우스 6세 성하께 바치는 페리클레스의 의인화)"라는 제목이 아름다운 장식과 함께 뚜렷하게 인쇄되어 있습니다.
'의인화(Prosopopea)'란 사물이나 죽은 사람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화자로 내세우는 문학적 수사법입니다. 즉, 이 한 편의 시 안에서 페리클레스 조각상은 생명력을 얻고 자신의 목소리를 냅니다. 수천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로마의 따스한 빛을 다시 보게 해 주고, 자신을 영광스러운 바티칸의 전당에 모셔준 교황 피우스 6세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찬양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정치인과 18세기 로마 교황, 그리고 당대 최고의 시인이 이 대리석 조각 하나를 매개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영적인 교감을 나누고 있는 셈입니다. 단순히 시각적인 형태의 복원을 넘어, 유물에 서사를 부여하고 문학으로 승화시킨 이탈리아인들의 깊은 인문학적 소양에 다시 한번 고개가 숙여집니다.
👣 투어를 마치며
바티칸 박물관은 바쁘게 혹은 빠른 걸음으로 스치고 지나가면, 아름답지만 차가운 돌 조각들의 무덤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작품에 새겨진 작은 그리스어 비문 하나, 곁에 놓인 빛바랜 시구 한 줄에 얽힌 이야기를 정성껏 번역하고 풀어내면, 수천 년의 역사가 바로 우리 눈앞에서 생생하게 숨 쉬기 시작합니다.
바티칸 박물관의 붐비는 인파 속에서 코린토식 투구를 쓴 채 고요히 지나가는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페리클레스를 찾아 눈인사라도 해 보시는 것은 어떨지요. 그 옆에 있는 빈첸초 몬티의 시를 바라보며, 먼 과거의 위대한 유산을 끔찍이도 사랑했던 옛 로마인들과 교황의 따뜻한 시선도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블로그 투어가 여러분의 일상에 작은 인문학적 휴식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더 깊고 흥미로운 로마의 숨겨진 이야기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Ciao!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