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세레나입니다. 로마 하면 여러분은 어떤 풍경을 떠올리시나요? 장엄한 콜로세움, 성스러운 바티칸, 혹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 등장하는 트레비 분수나 스페인 광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로마의 수천 년 지층 속에는 고대 유적이나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산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저는 로마 중심부에서 살짝 벗어나,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아주 기묘하고 아름다운 구역, '콰르티에레 코페데(Quartiere Coppedè)'로 여러분을 안내하려 합니다. 매일 로마의 역사를 공부하고 현장을 걷는 가이드인 저에게도 이곳은 일상 속 숨통을 틔워주는 매력적인 일탈의 공간입니다.
<사진출처: 위키백과>
건축가 지노 코페데가 창조한 판타지 유니버스
'콰르티에레'는 이탈리아어로 구역(neighborhood)을 뜻하지만, 사실 이곳은 행정구역상의 정식 명칭이 아닙니다. 1915년부터 1927년까지 피렌체 출신의 천재 건축가 지노 코페데(Gino Coppedè)가 로마의 트리에스테(Trieste) 지구 안에 설계한 26채의 아파트와 17채의 빌라 단지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스페인 바르첼로나에 안토니오 가우디가 있다면, 로마의 콰르티에레 코페데에는 지노 코페데가 있는 셈입니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단 하나, 로마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압도적인 혼종의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지노 코페데는 이탈리아식 아르누보인 '스틸레 리베르티(Stile Liberty)'를 바탕으로 고대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중세 고딕, 그리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을 자신의 입맛대로 뒤섞었습니다. 그 결과, 거대한 모자이크와 벽화, 비대칭적인 탑, 짐승을 형상화한 괴물 가고일, 신화 속 요정들이 건물 외벽을 빼곡하게 채우는 동화적이고 초현실적인 마을이 탄생했습니다.
코페데 지구에서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세 가지 보물
이곳의 산책은 언제나 민치오 광장(Piazza Mincio)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발길 닿는 대로 걸어도 좋지만, 세 가지 주요 스팟은 절대 놓치지 마세요.
대사관들의 아치 (Arco degli Ambasciatori): 코페데 지구로 들어서는 거대한 정문입니다. 아치 한가운데는 무쇠로 만든 거대한 철제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어, 마치 무도회가 열리는 중세의 성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압도적인 첫인상을 선사합니다.
개구리 분수 (Fontana delle Rane): 민치오 광장 한가운데 자리한 이 분수는 베르니니의 '거북이 분수'를 오마주한 듯하지만, 입에서 물을 뿜는 개구리들의 모습이 무척 익살스럽습니다. 이 분수에는 아주 유명한 현대사의 에피소드가 얽혀 있습니다. 1965년, 로마의 유명 클럽 파이퍼(Piper)에서 공연을 마친 전설적인 밴드 비틀스(The Beatles)가 옷을 입은 채로 이 분수에 뛰어들어 수영을 즐겼다는 사실입니다.
요정들의 집 (Villino delle Fate): 코페데 건축의 정수라 불리는 곳입니다.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프레스코화가 비대칭적인 건물 외벽을 감싸고 있으며, 유리와 연철, 테라코타가 빚어내는 디테일은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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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영화의 거장, 다리오 아르젠토의 영감이 탄생한 곳
이토록 기괴하고 신비로운 공간이 예술가들의 눈에 띄지 않을 리 없겠죠. 콰르티에레 코페데는 그 특유의 음산하면서도 매혹적인 분위기 덕분에 영화계의 수많은 거장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곳을 자신의 '시각적 페르소나'로 삼은 인물이 바로 이탈리아 스릴러와 호러 영화의 거장 다리오 아르젠토(Dario Argento)입니다. 그는 <수스피리아(Suspiria)>, <인페르노(Inferno)>, <수정 깃털의 새(L'uccello dalle piume di cristallo)> 같은 그의 대표적인 명작들을 바로 이 코페데 지구에서 촬영했습니다.
그의 영화 속에서 코페데 지구의 섬뜩한 가고일 조각상과 어두운 아치는 단순한 배경을 넘어, 주인공의 심리를 압박하는 거대한 미궁으로 묘사됩니다. 세계적인 마니아층을 거느린 아르젠토 감독 특유의 탐미적인 공포 미학은 바로 이 코페데 지구의 건축물들이 품고 있는 묘한 기운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아는 만큼 새로워지는 로마의 민낯
고대 로마의 황제들과 르네상스의 교황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스케일의 역사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 콰르티에레 코페데는 완벽한 해답이 되어줍니다. 한 건축가의 광기 어린 상상력이 만들어낸 이 골목을 걷다 보면, 로마라는 도시가 가진 포용력과 다양성에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다음 로마 방문에는 뻔한 루트 대신, 카메라를 메고 코페데 지구의 기묘한 아치 아래로 걸음을 옮겨보시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지노 코페데가 숨겨놓은 비밀스러운 문양 속에서, 여러분만의 새로운 로마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