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 벼랑 끝의 아름다움, '죽어가는 도시' 바뇨레조와 성 보나벤투라의 숨결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과 함께 걸어볼 곳은 라치오주와 움브리아주의 경계에 숨겨진,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마을 '치비타 디 바뇨레조(Civita di Bagnoregio)'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이곳은 깎아지른 절벽 위에 위태롭게 떠 있는 듯한 신비로운 풍경을 자아내는데요. 아름다운 풍광 이면에는 '죽어가는 도시(La città che muore)'라는 슬픈 별명이 숨어 있습니다. 좁고 기다란 구름다리를 건너야만 닿을 수 있는 이 고립된 마을에는 과연 어떤 역사가 깃들어 있을까요?
💡 도시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슬픈 이유, 흙과 바람의 시간
우선 아래 '바뇨레조' 사진을 함께 보실까요? 파란 하늘 아래, 외딴섬처럼 우뚝 솟은 마을과 그곳으로 이어지는 300미터 길이의 아찔한 보행자용 다리가 보입니다. 과거에는 주변 지역과 완만하게 연결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이 좁은 다리 하나만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랍니다.
이유는 바로 이 지역의 독특한 지질 구조 때문입니다. 바뇨레조는 화산재가 굳어 만들어진 비교적 부드러운 '응회암(Tufo)' 지대인데, 그 아래를 받치고 있는 것은 아주 연약한 '점토질(Argilla)' 지층입니다. 수천 년 동안 비바람이 몰아치고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밑동의 진흙이 씻겨 내려가며 절벽 가장자리의 바위들이 끊임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말 그대로 자연의 풍화 작용에 의해 지도가 매일 조금씩 바뀌고, 언젠가는 완전히 사라질 운명을 맞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붕괴의 과정이 빚어낸 거친 절벽의 단면과 고립된 마을의 자태는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압도적인 절경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 프란체스코 성인의 숨결, 위대한 신학자 보나벤투라의 생가
치비타 디 바뇨레조는 위태로운 절벽 위에 서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중세기 가톨릭교회사에 엄청난 자취를 남긴 인물을 배출해 낸 곳이기도 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함께 13세기 서양 중세 철학과 신학을 양분했던 위대한 학자이자, 프란체스코 수도회 제2의 설립자로 불리는 '성 보나벤투라(San Bonaventura)'입니다.
마을 안쪽으로 걷다 보면 절벽 끝자락에서 아래 사진 속 장소를 마주하게 됩니다. 생가의 화려한 건축물은 무너져 내리는 지형 탓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소박한 벽돌담에 'CASA DI S. BONAVENTURA(성 보나벤투라의 집)'라고 적힌 낡은 명판과 굳게 닫힌 철문 너머로 아스라이 펼쳐진 계곡의 풍경이 오히려 진한 여운을 줍니다. 서서히 허물어지는 고향 땅을 보며, 그는 훗날 신학자로서 인간 존재의 유한함과 신의 영원함을 더욱 깊이 묵상하지 않았을까요?
보나벤투라 성인과 아씨시의 프란체스코 성인 사이에는 아주 유명하고 감동적인 일화가 전해집니다. 보나벤투라는 어린 시절부터 병약하여 그의 어머니가 항상 걱정을 안고 살았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프란체스코 성인이 이 마을을 지나게 되었고, 보나벤투라의 어머니는 허약한 아들을 안고 나와서 성 프란체스코에게 축복을 청했다고 합니다. 이에 성인은 아이에게 축복하며, "보나 벤투라(Bona ventura)"라고 했다고 합니다. "너에게 좋을 일이 일어날거야!"라는 뜻입니다. 이 축복의 말이 훗날 그의 이름이 되었고, 그는 프란체스코 성인의 공식 전기를 직접 집필하며 평생을 그 숭고한 영성에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 영원하지 않기에 더욱 찬란한 곳
여행객들과 함께 바뇨레조의 무너져 내리는 벼랑 끝에 서면, 모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곤 합니다. 자연의 거대한 섭리 앞에선 고대,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 시대부터 이어져 온 찬란한 문명도 그저 찰나의 시간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로마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일정이 있다면, 언젠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기 전 이 '죽어가는 도시'가 들려주는 무게있는 생명의 이야기에 꼭 한번 귀 기울여 보시길 권합니다. 벼랑 끝에서 피어난 보나벤투라 성인의 굳건한 영성이 여러분의 발걸음을 더욱 경건하고 따뜻하게 만들어 주리라 믿습니다.
그럼 다음 산책길에서 또 재미있는 인문학 이야기로 뵙겠습니다. Ciao! 👋

